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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국생활사박물관 9―조선생활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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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국생활사박물관 9―조선생활관 1

입력
2003.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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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지음 사계절 발행·1만8,000원사계절출판사가 펴내는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는 국내 출판 기획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우리 민족의 생활사를 총 12권에 담아내는 이 시리즈는 그림과 사진 등 시각자료 중심의 대담하고 입체적인 편집과 철저한 고증에 바탕을 둔 정확하고 알찬 내용이 특징이다. 이번에 나온 제 9권 '조선생활관 1'은 이 시리즈의 조선편 첫 권으로, 천년 넘게 이어온 기존 전통이 유교 중심으로 바뀌던 조선 전기를 다루고 있다. 염정섭 서울대 규장각 책임연구원 등 8명의 전문가가 집필하고, 10여 명의 작가가 그림과 사진을 맡아 완성했다.

역사를 박물관 유물이나 박제로 남은 먼 옛날의 기억으로 만들지 않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생한 일상으로 되살려내려는 노력은 이번 책에서도 역력히 드러난다. 목차 다음에 나오는 본문의 첫 장은 곧 사라질 청계고가도로 위에서 바라본 동대문을 양쪽 펼침으로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서울 도성의 동쪽 정문을 21세기 풍경과 교차시킨 것은 역사를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를 담은 것이라 하겠다. 그 다음 페이지, '조선의 하늘'이라고 소제목을 붙인 짧은 글은 조선시대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가 밤 하늘을 안은 채 우뚝 선 사진을 배경으로 박혀있는데, 대담하고 멋진 상상력이 돋보이는 편집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지식을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고심하고 구석구석 꼼꼼한 손길을 뻗친 편집자의 노고가 책 곳곳에 배어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본문을 살펴보자. 책은 양반가의 생활, 관아가 있는 읍성의 생활, 일반 백성들이 사는 마을의 생활을 차례로 소개한다. 양반가의 생활은 선비의 하루를 살피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소설적 기법을 도입하고 있다. '닭 이 두어 번 홰를 치자 이언적(1491∼1553)은 몸을 일으켰다'는 문장으로 말문을 열어 이른 새벽 깨어나 잠자리에 들기까지 선비들이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설명한다. 그들의 대화가 주로 어떤 내용이었으며, 몸가짐은 어떠했고, 여가는 어떻게 즐겼는지 매끄럽고 생기있는 글로 풀어가는 것이, 꼭 잘 짜여진 단편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만나는 조선은 사대에 찌들고 당쟁에 멍들고 외곬수 가부장제 등 고루한 유교 이념에 짓눌린 답답한 나라가 아니다. 적어도 조선 전기는 그러했다. 혼인을 하면 남편이 처가살이를 하고, 부모가 죽으면 딸 아들 구별 없이 고루 재산을 물려받고, 제사도 돌아가며 지냈다. 천문도나 세계지도, 훈민정음 등 눈부신 과학적 성과를 잇달아 내놓으며 당당한 위용을 자랑했고 문화적 자부심이 넘쳤다.

이 책의 그림은 먹이나 채색 물감으로 조선 전기 생활상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바로 코 앞에서 보듯 그린 것이 있는가 하면 하늘에서 내려다본 마을 전경처럼 파노라마적 시야를 펼쳐보이는 것도 있다. 어느 것이나 그림의 각 부분에 해설을 붙이고, 유물이나 유적 등 사진자료로 내용을 보강하고 있다. 100여 점의 컬러사진과 40여 컷의 그림을 정교하게 배치하고 있어, 글을 읽는 시간 이상으로 그림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얻는 정보가 풍부하다.

물론 아쉬움도 없지 않다. 예컨대 왕실의 종묘제례를 자세히 소개한 반면 민간 제사는 빠뜨렸고,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면서 실생활에 그보다 널리 쓰였을 그릇은 다루지 않았으며, 의·식·주 가운데 상대적으로 의·식을 소홀히 넘기는 등 전체 구성 상의 불균형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생활사라는 방대한 영역을 한 권에 담는 데서 오는 불가피한 취사선택의 문제일 뿐, 이 책의 가치에 결정적 흠이 될 수는 없다.

2000년 7월 제 1권 '선사생활관'으로 출발한 생활사박물관 시리즈는 이제 3권이 남아있다. 조선 후기를 다룬 제 10권, 개항기와 구한말을 다룬 제 11권으로 조선편을 마무리하고, 제 12권 남북한생활관 편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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