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13g. 그새 엄청 컸네." 22일 경기 화성시 송산면 중송리의 폐염전.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 직원들이 350평 규모의 황복 양식 시범어장에서 치어들을 조심스럽게 그물로 건져올려 길이와 무게를 달고는 탄성을 질렀다. 지난달 18일 보령수산종묘시험장에서 1만4,000마리를 인공 부화해 양식장에 넣을 때만 해도 손톱만한 크기에 무게는 1.2g에 불과했던 것들이다."저 귀한걸 죽이려고…" 뻐끔뻐끔 가뿐 숨 몰아 쉬는 황복 새끼가 안됐던지 옆에서 지켜보던 양식장 주인 윤통일(39)씨가 한마디 걸쳤다. 연구소 이종윤 소장의 절반 농(弄)이 이어졌다. "껄껄. 많이 죽여야 성공합니다."
수온과 용존산소량, 염도 측정 등 현장조사를 마친 뒤에도 연구사들은 윤씨에게 황복 습성을 꼼꼼히 설명했다. "물은 연한 녹색을 띠게, 염분 농도는 8∼12퍼밀(바닷물 1㎏중 8∼12g), 사료는 하루 4번, 안 먹으면 오염되고 과식하면 병 걸리니 먹이 적정량은 80%, 수온은 25도…."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축제(築提)식 양식 시범어장에서는 기르기 까다롭다는 '복(鰒)중의 복' 황복의 생태양식이 한창이었다.
서해수산연구소가 황복 양식에 나선 것은 1998년. 15종의 식용 복 중 서해에만 사는 황복은 간장 해독 및 성인병 예방에 좋아 ㎏당 10만원이 넘는 고급 어종이지만 마구잡이와 하천 오염으로 씨가 마를 위기에 처했다. 양식업자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었으나 기르기 까다로워 쪽박을 차기 일쑤였다. 95년에는 보령수산종묘시험장이 인공부화에 성공했으나 방류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를 지켜본 이 소장 등 연구소 직원들은 농어민에게 고수익을 안겨줄 황복 양식방법을 보급하기로 하고 고작 3,000만원의 예산을 받아 일을 시작했다.
이들은 먼저 황복이 산란기(5∼6월)를 제외하곤 바다에 산다는 점을 활용해 '가두리 양식'을 했지만 "300∼350g이 돼야 상품으로 인정 받는데 100g 이상 자라지 않아" 실패했다.
2001년엔 바닷물과 민물이 섞인 기수(汽水)를 이용한 '순환여과식 실내 양식'을 도입해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보일러로 수온을 올려줘 매서운 추위도 견뎠지만 정전되거나 백점충에 걸리면 떼죽음을 당했다. 이 소장은 "3년 동안 길러 계약하고 출하날짜만 기다리는데 전기가 나가 몽땅 폐사한 사례도 있다"고 털어 놓았다.
150평 기준 2,000만원 이상 드는 연료비와 고밀도인 까닭에 스트레스로 꼬리와 주둥이가 물러터지는 등 고질적인 문제도 남았다.
연구소 직원들은 '자연 환경 그대로'가 답이라는 결론을 도출, 바다 부근에 둑을 쌓아 염도가 적은 지하해수를 끌어다 쓰는 축제식 양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실내 양식보다 성장 기간이 1년 단축되고 비용 절감,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 발생 확률 감소에다 자연산에 가까운 상품 생산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올해 초 후보지를 찾기 위해 전국을 누빈 직원들은 버려진 폐염전을 보고 손뼉을 쳤다. 국토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측면과 넓은 공간이 필요한 생태 양식에 그보다 좋은 곳은 없었다. 입지가 가장 좋은 화성과 전북 고창 폐염전을 시범어장으로 정했고 윤씨 등 폐염전 주인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남았다. 황복은 6도 이하에서 살 수 없어 월동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 이 소장은 "비닐하우스 어장을 따로 세울 예정"이라며 "황복이 겨울나기에 성공하면 농어 넙치 돔 등도 축제식 양식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시범어장이 성공하면 서해안에 산재한 1,500㏊의 폐염전에서 연간 1,500톤(약 450억원)의 황복 대량 생산의 길이 열리게 된다.
/화성=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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