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검찰 독립기념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검찰 독립기념일"

입력
2003.07.25 00:00
0 0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2주일쯤 지나 '평검사와의 대화'를 가졌다. TV 카메라 앞에서 대통령과 검사들이 예의와 체면을 내던지고 이전투구(泥田鬪狗)식의 논쟁을 벌인, 사상 초유의 일은 두고두고 많은 말을 만들어냈다. 당돌하게 따지는 검사의 질문에 "이 정도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고 했던 노 대통령의 응수는 유행어가 됐다. 또 '검사스럽다'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대통령에게 덤벼들었던 검사들의 버릇없음을 탓하는 여론도 상당했다. 보통 사람 사이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가치관에 따라 "대통령이 잘 했다", "검사들 말이 옳다"는 논쟁으로 제법 시끄러웠다.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대목이 하나 있다. 그날의 토론에서 누가 잘했느니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다. 바로 그날 검찰의 수사권이 독립되었음이 만천하에 공포되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도 TV 앞에서 "절대 검찰 수사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고, 검사들도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토론회를 지켜본 검사들은 그날 저녁 술자리에서 "3월9일을 검찰 독립기념일로 하자"고 했다고 한다.

오늘 우리는 '검찰독립'의 증거를 여실히 보고있다. 집권여당의 대표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헌정사에 없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예전 같으면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제거하겠다고 마음 먹지 않고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검찰이 조금 심하다 할 정도로 하고 있다"고 불만을 얘기할 정도로, 이제 검찰은 청와대와 따로 놀고 있다. "청와대 사람이든, 국회의원이든 압력이나 청탁성 전화만 걸려오면 바로 공개해버리겠다"고 벼르는 검사도 있다고 한다.

오래 전에 만났던 한 검찰 간부는 권력과 검찰의 관계를 '호랑이 등에 탄 사람'에 비유한 적이 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하면서 휩쓸고 다니면 천하가 다 머리를 조아리고 벌벌 떤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어쩔 수 없이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면 그 사람이 바로 다음 먹이가 된다. 호랑이 등에 앉았을 때는 기분 좋겠지만 그게 그렇게 오래 가는 일이 아니다."

이전의 대통령들과는 달리 노무현 대통령만큼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지 않았다. 검찰 간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어쩐지 으스스하다"고 말했을 정도로 대통령 스스로 검찰을 조심스럽게 대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여당쪽에서는 "국회를 검찰의 시녀로 만들려고 한다"며 '검찰 파쇼화'라는 극단적 용어를 사용, '검찰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고 있다. "아무런 통제 없이 검찰을 풀어놓을 수 없다"며 청와대쪽을 원망하거나 서슴없이 '검찰 통제론'을 말하고 있다. 곰곰히 따져보면 '검찰에 대한 공포'는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다. 권력이 검찰로 하여금 정치적 반대자들을 탄압하던 시절, 한편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간절히 소망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에 떨었던 것 아닐까? 지금의 여당이나 야당이나 할 것 없이 '한쪽으로 쏠린 검찰'의 무서움을 경험했던 터라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이해는 간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눈에도 여전히 검찰이 권력에 휘둘리고 있는 것으로 보일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검찰이 지금 거론되는 각종 비리를 철저히 수사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가리지 않고 비리에 관련된 인사들을 단죄하는 검찰에 여론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반대로 검찰이 주어진 권한을 멋대로 사용할 때 마치 사냥꾼이 호랑이를 쏘아 죽이듯 여론은 분노할 것이다.

신 재 민 정치부장jmnew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