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전문 변호사들은 '정리해고'(경영상 해고)를 당한 근로자가 구제책을 문의해오면 "어렵다"는 말과 함께 머리부터 가로 젓는다. 기업 위기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원인 추궁에 앞서 '파산 위기'라는 급박한 '상황 논리'는 법원이 사실상 정리해고를 판단하는 거의 유일한 기준이 돼버렸다.하급심과 대법원을 거치는 동안 법원은 '정리해고는 경영상의 판단이며, 경영진은 노조와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협의 정도만으로 충분하다'라는 판례를 공고히 해왔다. 최근 서울고법은 대우자동차 노조원이 낸 해고무효 확인 청구소송에서 "정리해고를 하더라도 노조 합의 하에 실시하겠다"고 명시한 단체협약의 강제성을 부정하며 이 같은 판례를 재확인했다. 재판부는 "단체협약 이후 급격한 상황 변화로 경영이 악화돼 노조도 인력구조조정 등 기업 회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데 동의했고, 이후 12차례에 걸친 사측과의 협의에 응한 것으로 보아 이전의 단체협약은 그 의미가 변경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변호사는 "만약 노조가 '기업회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사표명을 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처음의 단체협약을 고집했다 하더라도, 법원은 '노조가 회사 상황을 고려치 않고 협의에 응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는 쪽으로 해석해 똑 같은 결론을 내렸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즉 정리해고에 있어 노조가 어떤 제스처를 취하더라도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지난 2월 대법원은 한양공영 노조원 5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파업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리해고라 할 지라도 해고 대상자 선정 기준이 지극히 비상식적이거나 사용자의 해고 회피 노력이 충분하다고 볼 수 없을 경우에 법원은 근로자의 편에 서기도 한다. 대법원은 최근 전 마사회 직원이 중앙노동위원회와 마사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사회는 정치 성향이나 출신 지역을 기준으로 정리해고 대상자를 선정했었다.
서울행정법원도 2000년 한진관광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청구소송(99구31779)에서 "경영상 해고 전까지 일반 관리직 사원들에 대하여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 것 외에는 달리 다른 사업부분으로의 전보나 일시휴직 등 해고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경우"는 경영자의 의무인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정리해고와 달리 각 사안별로 판단이 달라지는 일반해고(징계해고)도 승소가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해고이유가 합당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책임은 사측에게 있지만, 사측에서 제시하는 입사약정이나 징계사유에 대해 반박하기 위해서는 회사 동료의 증언이 중요하기 때문. 한 변호사는 "해고 기준에 대한 사측의 내부자료를 확보하는 것도 어렵고, 계속 회사를 다녀야 하는 다른 직장 동료를 설득해 법정에 세우는 것도 쉽지가 않다"고 일반해고 소송에 있어서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하지만 사측의 논리에 치우쳤다는 비판 속에서도 하급심 법원은 지난 해와 올들어 불법 파견 근로자와 계약직 근로자의 고용 승계를 인정하는 의미있는 판례를 만들어 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해 말 운전기사 전원에 대하여 기간을 1년으로 정한 계약서를 작성토록 한 운수회사에 대해 "기한 종료 후 해고가 가능하다는 것을 빌미로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고 근로자의 단결권을 침해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계약서는 무효"(2002구합 9339)라고 판결했다.
특히 서울고법은 지난 3월 1심을 깨고 도급 계약 형태로 위장한 불법 파견 근로자도 2년 이상 근무했을 경우 정식 근로자로 채용해야 한다고 판결(2002누12320), 50만명에 이르는 불법 파견 근로자의 숙원을 풀어줬다. 재판부는 "A업체가 B업체로부터 근로자를 파견 받아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해당 근로자를 A업체의 정식 직원으로 채용토록 규정하고 있는 '파견근로자 보호법'의 근본 취지는 기업 편의를 위해 정규 근로자를 비정규직인 파견 근로자로 대체하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라, 파견 근로자들의 고용 불안을 제거하고자 한 것"이라며 잊혀져 가는 노동관련법의 근본 취지를 새삼 일깨웠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노동전문 변호사들
노동 전문 변호사들은 "대법원으로 갈수록 가혹한 판결이 나온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정리해고 소송은 의뢰인에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안겨주기가 힘든 상황이어서 수임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노동 전문 변호사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총장인 김선수 변호사, 민변 노동복지위원장을 역임한 법무법인 한울의 이경우 대표 변호사, 법무법인 명인의 김도형, 강기탁 변호사, 법무법인 시민의 김남준, 전영식 변호사 등을 꼽을 수 있다. 민주노총 법률원에도 권두섭, 권영국, 강문대 변호사 등 4명의 상근 변호사가 있으며 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산하 법률원의 김기덕 변호사도 노동 법률 상담과 소송을 맡고 있다.
김선수 변호사는 1989년 서울대병원 직원 1,000여 명이 제기한 시간외 근로수당 등 임금 청구 소송 사건을 맡아 대법원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얻어냈고, 최근 서울행정법원에서 "노조 위축을 목적으로 한 1년 기한의 근로 계약서는 무효"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강기탁 변호사는 인사이트코리아에서 SK(주)로 불법 파견됐다가 해고 당한 근로자 사건에 대해 서울고법으로부터 "불법 파견근로자도 고용승계 대상"이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법무법인 지평의 김성수 변호사는 지난해 알리안츠 제일생명보험의 부부사원 강제퇴직 사건을 맡아 "사내부부 중 한 명의 사직을 강요한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은 판례를 만들었다.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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