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방송국 PD죠. ABC와 NBC에서 쇼 프로그램의 귀재로 불리기도 했고 빌보드 차트 3위에 노래를 올릴 정도로 출중한 작곡 능력도 갖췄답니다. 그런데 믿지 않으실지 모르겠지만 서른 세명이나 죽인 살인의 대가이기도 하지요. CIA 비밀암살요원이라고 들어보셨나요?"조지 클루니는 섹시함과 품위가 위태롭게 결합된 듯한 배우다. 그는 감독 데뷔작 '컨페션'(Confession of a Dangerous Mind)으로 2월 베를린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샘 록웰)을 거머쥐었다. 지명도에 비해 내세울 만한 흥행작 없이 예술영화와 B급 영화를 오가던 그답게 연출 데뷔작도 낯설고 독특하다. 방송국 쇼 PD 겸 정보요원이라니 믿을 수 없는 소재다. 그러나 적어도 척 배리스라는 인물의 자서전에 따르면 사실이다. 신인 감독 조지 클루니는 이제껏 나온 39편의 출연작보다 훨씬 개성적이고 위트와 깊이가 골고루 스며 있는 작품으로 은막을 두드렸다.
일기와 기사, 인터뷰, 1984년 출간한 자서전 등을 바탕으로 구성한 척 배리스의 생애는 꽤 그럴 듯하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8½'에 나오는 꿈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척 배리스의 머리 속 망상과 꿈 같은 현실의 교차가 뛰어나다. 속물스럽고, 여색을 밝히며, 성공을 갈구하는 척 배리스는 남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가 꾸었던 살인의 망상 또한 누구나 한 번쯤은 품었음직하다. 꼭 누굴 죽이겠다는 게 아니라 '저 놈 좀 죽어줬으면' 하는 정도 말이다.
되는 일도 없고, 자신의 아이디어가 수용되지도 않아 '더러운 세상'을 한탄하던 신참 방송국 PD 척 배리스에게 CIA 요원 제의는 유혹적인 미끼였다. '폼도 나고 돈도 버는' 일을 마다할 까닭이 없었다. 멕시코에서의 살인을 시작으로 한 호텔방에 처박혀 과거를 괴로워하기 전까지 20여 년 동안 그는 쇼를 만들면서 틈틈이 살인 지령을 완수했다.
척 배리스를 사주하는 의문의 요원 짐 버드 역을 맡기도 한 조지 클루니는 척 배리스의 이중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삶을 코미디, 스릴러, 로맨스 등 여러 장르를 통해 구성한다. 유년기부터 말년까지의 연대기적 구성을 기본 뼈대로 삼고 인터뷰와 회상 장면을 끼워 넣었다. '존 말코비치 되기'를 쓴 찰리 카우프만이 쓴 각본은 섬세하고 치밀하다. 줄리아 로버츠, 드류 배리모어, 맷 데이먼 등 호화배역은 차분하면서도 튀지 않는 연기로 거든다. 각 장면에 적절히 삽입된 재즈와 팝송, 시적 정취까지 풍기는 화면 구성, 뒤통수를 치는 깜찍한 반전도 즐겁다. 피터 폴 & 메리 등의 감미로운 팝송이 흐르는 가운데 한 영화에 불러 모으기 힘든 할리우드 스타들이 모여 모순으로 가득한 냉전시대와, 그 시대의 모순된 인간상을 보여준다. 신인 데뷔작이 이렇게 멋지고 고급스럽기도 힘들 것이다. 25일 개봉.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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