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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우리 만화] 고우영의 "수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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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우리 만화] 고우영의 "수호지"

입력
2003.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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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인 '수호지'는 송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108명의 호걸이 양산박에 모여 부패한 조정에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국 대륙 곳곳에서 힘깨나 쓴다는 놈들을 죄다 모아 놓았으니, 어찌 그 이야기가 재미없을까.수호지는 1973년 3월 '일간스포츠'지면을 큼지막하게 장식한 고우영(65) 선생의 만화로 우리에게 더욱 친숙해졌다. 지금의 30·40대 장년층은 만화 수호지에 등장했던 노지심이며 송강, 무송과 무대 형제, 양지, 그리고 요부 반금련 등의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고우영의 만화 '수호지'는 최초의 스포츠 신문인 '일간스포츠'와 떼어서 생각하기 어렵다. 69년에 창간된 이 신문은 엔터테인먼트 뉴스를 주로 다뤄 젊은층 독자를 강력하게 흡인했다. 72년 1월 일간스포츠는 사세 확장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는데 그것이 바로 고우영의 만화 '임꺽정'이었다. 일간신문사상 유례가 없었던 지면절반 크기의 일일 연재만화였다. 만화 임꺽정이 14개월 간 연재되면서 붐을 일으킨 뒤, 그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 바로 '수호지'였다.

고우영의 수호지는 '이미지의 형상화'라는 만화의 고유한 장점을 최고로 활용한 케이스로 꼽힌다.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그려보던 무송이나 반금련, 노지심의 막연한 모습을, 고우영이라는 만화가를 통해 '생생한 실물 이미지'로 대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무송(打虎武松)의 늠름한 기골과 착하고 어리숙한 무송의 형 무대, 그리고 얼굴만 보아도 색기(色氣)가 좔좔 흐르는 요부 반금련. 고우영 만화 수호지를 감칠 맛나게 했던 최고 인기 요인은 바로 만화가의 뛰어난 '캐릭터 각색력'에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사랑받았던 캐릭터는 무송의 형 무대였다.

리본으로 묶은 머리카락에 커다랗게 삐쳐 나온 쥐 이빨, 단추 구멍 만한 눈을 천진난만하게 꿈벅거리는 모습의 무대는 청년 독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70년대 초반 학번의 대학생들은 '무대 팬클럽'을 결성했을 정도로 열광했다. 당시 '청년문화'로 회자되던 생맥주와 통기타, 청바지와 함께 이들을 선도했던 대중 문화계 스타로 '별들의 고향'의 소설가 최인호, '그건 너'의 가수 이장희, 그리고 만화가 고우영이 꼽혔다.

고우영의 수호지는 74년 271회 연재를 끝으로 중단됐다. 부패한 조정과 관료들에 대항한 양산박 호걸들의 이야기가 체제를 전복하려는 '불온한 내용'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 속편은 2000년 '굿데이'가 창간되면서 잠시 연재되기도 했으나 그나마 결론을 내지 못하고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2002년 여름 고우영 선생은 대장암이 발병, 수술과 함께 항암 치료를 받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최근 건강을 회복한 고우영 선생은 "수호지의 미완성 부분을 생애의 작업으로 여기고 끝까지 매달릴 것"이라며 창작의욕을 불사르고 있다.

고우영 선생은 만주에서 출생해 해방 후 월남했다. 52년 피난지 부산에서 16쪽짜리 만화 '쥐돌이'로 데뷔를 했고, 57년에는 형 일영씨의 유작 '짱구박사'를 추동성이란 필명으로 이어 인기 만화가 반열에 올랐다.

/손상익·한국만화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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