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대단히 높다. 1987년 민주화 이래 '지역주의적 구(舊)정치'로 일관해온 한국정치에 대한 변화 요구이다.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뒤따르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과거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압박인 것이다. 아마도 대통령선거가 이루어졌던 작년으로부터 국회의원 총선이 이루어질 내년에 이르는 기간에 이루어질 정치개혁의 결과에 따라 향후 한국정치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다.정치개혁의 과제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정치엘리트 교체의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정치제도 개선의 문제이다. 전자가 사람의 문제라 한다면 후자는 시스템의 문제이다. 이 두 차원에서의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정치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 최근 선관위에서 제출한 정치개혁안은 후자인 제도 개혁에 대한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우선 선관위는 선거운동을 대선은 1년 전부터, 그외의 선거는 180일 전부터 허용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선관위 안은 또한 예비후보자의 정치자금 모집도 허용하고 있다. 이는 기성 정치인과 정치 신인 간에 존재했던 사실상의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후보자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조치라 할 수 있다. 물론 장기간의 선거운동으로 인한 혼란이 우려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혼란은 선거운동을 보다 투명하게 하는 제도상의 보완과 변화된 국민 정치의식을 통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선관위는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을 투명화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100만원을 초과하는 정치자금의 기부와 50만원을 초과하는 정치자금 지출의 카드 사용을 의무화하고, 1회 100만원을 초과하거나 연간 500만원 이상의 고액기부자의 인적 사항을 공개토록 하는 안이 그것이다.
정치자금 회계 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정치자금 수입과 지출에 있어 카드 사용 의무화는 필수적인 조치이다. 고액기부자의 인적사항 공개 역시 정경유착 등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이다. 그러나 그 한도의 설정에 대해서는 우리 정치의 현실을 감안해 좀더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선관위는 또한 당내 경선 과정에서 비당원의 참여를 허용하는 한편 경선 낙선자의 입후보를 금지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당내 경선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장치라 할 수 있고, 최근 중요한 정치발전은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보장한 경선을 통해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선관위가 비당원의 경선과정 참여를 허용하고, 경선 낙선자의 입후보 금지를 제안한 것은 매우 적절한 조치라 할 수 있다. 경선 낙선자의 입후보 문제는 본인이 알아서 판단할 정치도의 상의 문제이기는 하나, 그것이 지켜지지 않은 현실에서 법적 금지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밖에 19세로 선거연령 인하, 비례대표 3분의1의 여성공천과 순번제 배치 의무화가 이번 선관위 안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 또한 정치에 대한 국민 참여를 보다 증대시키고 그 평등한 참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바람직스럽다.
문제는 이러한 내용들이 기성 정치권 및 기성 정치인들의 이해에 반할 가능성이 커, 이러한 장애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물론 그 과제가 선관위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치권과 국민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부터라도 정치개혁안에 대한 국민적 토론이 치열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정 해 구 성공회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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