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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금연記]<끝>유지창 産銀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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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금연記]<끝>유지창 産銀 총재

입력
2003.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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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고1때부터 담배를 피웠던 내가 금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내 딸 경민(20)이 덕분이다. 상사의 지시와 아내의 성화에도 아랑곳 하지 않던 내가 딸의 집요한 설득과 논리에는 지고 만 것이다. 그 사연이 재미있다.딸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95년 2월 어느 날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하루에 담배 2갑씩을 피워대며 밥 먹을 때는 '식후연초'에 가슴 설레던 전형적 골초였다. 식사 후 담배 한 개피를 피워 물면 뱃속에 서 있던 쌀도 눕는 다는 식으로 흡연을 합리화시켰다. 그런데 느닷없이 딸 아이가 '아빠 담배 끊기 투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빠, 담배가 몸에 안 좋으니 끊으세요"라고 설득 작전을 폈다. 학교에서 담배의 해악에 대해 들은 모양이었다.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얼마 후에는 내가 담배만 피우면 문을 꽝 닫고 나가버렸다. 그래도 안 되자 담배를 감춰두는 단계를 거쳐, 아예 담뱃갑을 구겨버리는 본격투쟁 작전에 돌입했다. 2개피밖에 안 피운 담배를 구겼을 때는 화도 많이 났지만, 아빠 건강을 생각하는 딸 아이를 야단칠 수도 없었다. 딸 아이가 중1이 됐을 때 나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논리적 투쟁'에 지고 만 것이었다. "공부 좀 해라. 아빠 잘 되라고 이런 소리 하냐?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내 잔소리를 딸 아이가 그대로 변용시켜 버린 것이다. "아빠, 담배 끊으라는 게 나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다 아빠를 위해서야."

아버지로서 자존심을 구긴 상황에서 96년 2월 세계무역기구(WTO) 파견근무를 위해 스위스 제네바로 가게 됐다. 이를 계기로 나는 금연을 선언했다. 공항 흡연실에서 마지막 담배를 피웠다. 98년 6월 청와대 금융비서관으로 귀국할 때까지 무사히 금연에 성공했다. 하지만 국내에 들어온 뒤가 문제였다. 너무 많은 일에 골치가 아파 담배를 다시 피웠다. 그러다 '21세기는 2001년에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2000년 12월31일 밤10시를 기해 담배를 다시 끊었다.

이제는 확실히 금연에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담배 피우는 모습이 멋있다고는 생각하지만, 담배 연기가 이제 싫다. 병원에 가도 치료가 안 됐던 기침과 가래가 깨끗이 사라졌고 얼굴색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것이 바로 금연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많은 분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다. '금연 성공 전략'에 대해서다. 첫째, 주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부터 금연 권유를 받아라. 내 경우에는 딸이었다. 아들 녀석은 딸 아이가 숨겨놓은 담배가 있는 장소를 슬쩍 알려주곤 했다. 둘째, 시기와 이벤트를 정해라. '21세기 시작 기념', 이런 식이다. 셋째,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골치 아프니까 담배 한대 정도는 피워도 된다'라는 자기합리화는 금연의 적이다. 나 역시 한국일보에 '나의 금연기'를 쓰면서 또 한번 맹세 한다. "담배는 영원히 안 피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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