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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法이 눈감은 가사 조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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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法이 눈감은 가사 조력원

입력
2003.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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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명씩 낯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상담을 한다. 때때로 선례나 새로 바뀐 법률을 거듭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기존에 알고 있던 법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무감각하게 설명을 한다.며칠 전 자그마한 체구의 한 아주머니가 사무실을 찾아 오셨다. 의사 부부의 집안일을 도와주는 가사 도우미로 나가 일을 하다 욕실 청소 도중 넘어져 허리를 다치셨단다.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와서 집 주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내가 밀기라도 했느냐, 다 알아 봤는데 아무 것도 안 주어도 된다더라"고 했다며, 그게 사실인지 알고 싶으시다는 것이다.

별 생각 없이 "아주머니 같은 가사근로자에게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집 주인의 과실이 없으면 보상받기 어렵다"고 말씀드렸더니, 아주머니는 "그건 왜 그런 건가, 우리 같은 사람이 더 보호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놀라 되물으셨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상식적으로 더 보호받아야 할 사람에게 보호를 주지 않는 법, 그리고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던 변호사.

가사근로자에게는 근로기준법 뿐 아니라 최저임금법의 적용도 배제된다.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니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도 받지 못한다. 교과서에는 그 이유가 '이들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국가적 규제와 감독을 행하는 것은 가족간의 정리 또는 사생활 보호를 고려할 때에 적절하지 않다고 보아 적용을 배제한 것'이라고 되어 있지만, "내가 밀었냐"고 따지는 주인에게 무슨 가족간의 정리나 보호해야 할 사생활이 있단 말인가.

외국 입법례를 찾아보았더니 가사근로자에게 노동법 적용 자체를 배제한 곳은 없고(우리가 베낀 일본법을 빼면) 근로시간에 관한 규정 등 일부를 적용하지 않을 뿐이다. 장래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이 확대된다면 이 부분도 같이 개정되어야 마땅하겠지만, 이렇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상태에서 저절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면서 일단 재해보상 청구를 하고 위헌심판제청 신청이라도 해야 할지 의논하려는데, 아주머니는 "법에 그렇게 써있다는데 어쩌겠냐"며 어깨를 떨구고 사무실을 나선다.

주로 중·노년층 여성이 담당하는 '가사 조력원' 문제는, 소리 내어 말하는 개인이나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집단이 없어, 사회적 이슈가 된 일이 없다.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임금 구조 기본 통계에도 소 직종별 분류가 안 되니, 그 숫자가 따로 잡히지 않아 정확한 수가 얼마인지 알기도 어렵다. 나 자신도 솔직히 그 동안 "시행령을 개정해서 5인 미만 근로자 고용 사업장까지 근로기준법 적용범위를 확대하라"고 주장해 왔지만 아예 법률 자체에서 적용을 제외하고 있는 가사 조력원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가사 조력' 노동은 대표적인 미숙련 저임금 노동으로, 이들의 열악한 근로 조건과 노동가치의 저평가는 여성의 가사 노동에 대한 낮은 평가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동시에 여성이 저임금 직종에 편중되어 있는 우리 노동시장 구조를 재생산하는 사회적 의식 구조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법이 가장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 법은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어디 가사근로자들의 노동법 적용 문제뿐이랴. 법과 제도가 손길이 미쳐야 하는 바로 그 곳에 눈 감고 있는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나 같은 엉터리가 비정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넘어가고 있으니 상식을 가진 당신이 놀랄 수밖에.

아직 발견해야 할 세상의 어두운 곳과 '당신의 상식'에서 배워야 할 법리가 너무나 많다.

김 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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