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운 것 중에 '테르미도르의 반동'이라는 것이 있다. 테르미도르는 프랑스 혁명 당시 새로 만든 달력(혁명력)상의 12달 중 하나다. 이 달인 1794년 7월 보수세력이 급진개혁파인 로베스피에르 일당을 축출하고 정치적 반동으로 나아갔기에 생긴 말이 바로 '테르미도르의 반동'이고 줄여서 그냥 '테르미도르'라고도 부른다.요즈음 굿모닝시티 비리의혹과 대선자금 문제로 온 나라가 난리인데, 이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참여정부의 테르미도르'이다. 쉽게 말해, 참여정부의 보수 반동화 증후군이다. 묘하게도 이는 프랑스혁명의 반동화와 마찬가지로 7월에 시작됐다. 이는 올 봄 노사가 합의했던 내용을 무시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철도구조조정에 반발해 일어난 철도파업에 대해, 참여정부가 '초전박살' 전략에 의해 조기에 공권력을 투입함으로써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이은 노사분규에 대해 자신의 "성질을 보여주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이 오랜만에 약속을 지킨 것이다.
이어 한 재벌총수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라는 말 한 마디를 하자 국민소득 2만 달러 프로젝트가 참여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로 등장했다. 누가 대통령인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라니 새마을운동 노래만 울리지 않았지 지금이 유신 시대인지, 참여정부 시대인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는 학생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반대 투쟁을 벌여온 전교조의 원종만 위원장을 전격 구속했다.
4년 전 전교조가 합법화된 이후 처음으로 위원장을 구속한 것이다. 특히 도주의 위험이 없고 조사를 받기 위해 자진출두한 위원장을 전격 구속해 충격을 주고 있다. 나아가 노무현 정부는 두 명의 대학생을 다른 것도 아니고 단지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빈활교양자료집' 등을 갖고 있었고 이중 일부를 온라인에 게재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전교조의 경우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고 밝히는 한편 20일 시위에서는 참여정부를 상징하는 관을 가지고 나와 죽음을 알리는 참여정부 장례식까지 거행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원래 테르미도르란 개혁을 강하게 추진하다가 그것이 좌절되고 보수화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참여정부의 경우 테르미도르를 이야기할 계제가 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개혁을 추진한 게 별로 없는 상황에서 테르미도르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의 말에 따른다면 아직까지는 시스템을 만드는 기간이고 본격적인 개혁은 그 연후에 시작되는 만큼, 과연 언제부터 본격적인 개혁이 시작되나 목이 빠지게 기다려지는 상황에서 개혁은 커녕 엉뚱하게 테르미도르가 나타난 것이다.
이와 관련, 주목할 것은 최근 들어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등과 관련해 참여정부, 재계, 주류언론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것이 국정과 개혁의 핵심방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는 세계화에 맞추어 노동자 해고를 선진국처럼 더 쉽게 만드는 등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론'과 같은 고전적 서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한 인간을 감옥에 가두는 것, 국가인권위원회의 판결이 잘 지적했듯이 심각한 인권 침해의 우려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도 하지 않은 NEIS와 같은 교육정보의 중앙집중을 '정보 집중은 불가피한 추세'라는 기이한 논리로 정당화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전교조 위원장을 구속하는 것이 과연 글로벌 스탠더드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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