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발표된 B612의 '나만의 그대 모습'은 록발라드라는 장르를 비로소 자리잡게 한 곡이다. '이밤이 지나면 그대를 그대를 잊고 싶어'라고 한껏 올라간 데서 또 다시 끌어 올려 '안개 속에 가려진 희미한 너의 모습도'라고 시원하게 내 뱉는 목소리는 날 선 칼이 공중에서 번쩍할 때와 같은 서늘한 전율을 안겨주었다.그 매력 탓에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의 남성이라면 노래방에서 한번쯤은 시도했음 직하다.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샤우트와 애절한 가사가 어우러져 남성적 매력을 과시하기에 알맞은, 노래방 명곡이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 서준서(32)가 새 앨범을 냈다. '나만의 그대 모습'을 부를 당시 어린왕자가 사는 소행성 'B612'를 따서 붙인 그룹명처럼 풋풋한 20대 초반이던 그도 이제 서른 줄에 접어 들었다. 앨범 제목이 재미 있다. '얼라이브'(Alive). 아직 건재함을 알리고 싶었다는 말을 "아직까지 악착같이 버티고 있다는 의미죠"라고 바꿔 말했다.
그 동안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가 무엇보다 궁금하다. 누구나 탐내는 목소리를 가졌지만 솔로로 독립한 후 일이 이상하게도 잘 풀리지 않았다. 1996년 신나라레코드와 계약했지만 2000년 계약이 종료되기까지 제대로 앨범을 내지 못했다. 99년 만든 2집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발매되지 못한 상태. 마음 고생이 심했을 법하지만 "장장 7년 만에 나온 앨범이다 보니 쳐다보면 징그럽다"는 말로 대신했다.
앨범에 수록된 곡은 요즘 감각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세련됨을 지니고 있다. 타이틀곡 'Promise'는 쉬운 멜로디 탓에 힘이 좀 덜 들어간 느낌. 옛날 같은 록발라드를 기대한 팬이라면 좀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 '나만의 그대 모습'으로 기억되는 나에게서 벗어나 다른 노래로 인정받고 싶다는 소망을 담았다"고. 주제도 주로 사랑 얘기를 담았다. "듣기 좋고 부르기 편한 음악을 하고 싶다"던 그는 "이제 노래방에서 힘들이지 않고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부르려구요"라고 농담도 섞었다. '상처' '다시 내게로'처럼 옛날의 분위기를 느껴 볼 수 있는 곡과 함께 '반전'처럼 세련된 전자음악을 맛볼 수도 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서면 "관객과의 기 싸움에서 눌리는 것 같다"고 흐른 시간을 탓하던 그. 끊임없이 노래로 살아 남고 싶었던 그의 열망이 오롯이 담긴 앨범이어서 다른 앨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명력과 진지함을 접할 수 있다.
/최지향기자
사진=박서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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