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지법 309호 법정에서 열린 대북 송금 사건 2차 공판은 주요 당사자간의 책임 떠넘기기식 발언이 두드러졌다. 특검 조사와 1차 공판에서 줄곧 "송금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주장했던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공판에서 특검측이 '정부 몫의 정책지원금'이라고 밝힌 1억달러 송금이 추진된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 전 수석의 입장 변화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통치행위'라는 주장으로는 실정법의 덫을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이 전 수석은 "정상회담 부분에 대해 사정상 정확히 진술할 수 없어 엇갈린 말을 해왔지만, 공판을 통해 모두 밝히기로 했다"며 "지난 공판에서 정상회담 전 송금 사실에 대해 '자세히 몰랐다'고 답변한 것은 '1억달러는 정상회담 전에 보내는 것으로, 3억5,000만달러는 경협 차원에서 나중에 보내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며 과거 진술까지 정정하고 나섰다. 그는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임동원 전 국정원장과의 회동에서 임 전 원장 등의 송금 지원 요구에 대해 자신은 "남북교류협력기금을 이용하자"며 '적법한' 주장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 전 수석은 발언 도중 눈물을 흘리다 목이 메이기도 했으며, 변호인측으로부터 "(계속해도) 괜찮겠느냐"는 말까지 들었다.
이 전 수석의 '책임 떠넘기기'발언 직후 박 전 실장은 반대 신문을 통해 이 전 수석의 발언은 물론, 1억달러를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에게 요구했다는 공소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박 전 실장은 "지난 2월 대통령 담화 발표 직전, 확인 차원에서 이 전 수석에게 산업은행 불법 대출 여부를 물었으나 '아무 문제없다'는 답변을 들었고 임 전 원장도 국정원 불법송금에 대해 '그런 사실 없다'고 말했다"며 불법행위를 전혀 몰랐음을 강조했다. 박 전 실장은 그러나 북한측의 현금제공 요청 및 정부의 1억달러 제공 약속에 대해선 1차 공판 때처럼 "남북관계 및 외교적 특수성을 고려할 때 말하지 않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며 답변을 피했다. 이에 대해선 임 전 원장도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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