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참여, 탈(脫)권위'라는 새로운 가치의 전파와 정착을 위해 권위주의적 통치기구의 정치적 이용을 포기하고 국민적 역량에 기대를 거는 노무현 정부의 야심찬 시도가 정략적·문화적 반발에 직면해 과도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노 정부에 대한 비판엔 타당한 것들도 있을 것이나 어떤 비판의 바탕엔 우리 모두의 완고한 고정 관념이 자리잡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 볼 일이다. 이와 관련, 육군본부 정훈감을 지낸 예비역 준장 표명렬씨가 최근에 낸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는 책은 주목할 만 하다. 개혁이>
이 책은 다른 장점을 떠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멸시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는 걸 고발했다는 점에서 노 정부가 처해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을 시사해주고 있다.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군대'라고 말들은 거창하게 하지만, 바로 국민인 병사들은 그토록 불신과 멸시를 받고 있었다." 표씨는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그 점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우리가 군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고정 관념 때문은 아닐까.
"군대란 무조건 복종을 체질화시켜야 돼."
"군대는 그 본질적 특성상 민주화란 말이 성립될 수 없어."
"군대란 인권 따위를 운운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야. 전쟁들을 안 해봐서 그런 헛소리들을 하는 거야."
표씨는 그런 고정 관념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그것들을 설득력있게 격파한다. 그는 민간인 출신들이 함께 끼어있는 자리에서 군을 비판하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육사 후배들의 옹졸함을 질타하는가 하면, "보안업무의 발전을 위해서도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민들의 인권이 살아 숨쉬게 될 때, 목숨을 바쳐 지킬 만한 나라라고 생각될 때, 그 자부심은 자연스레 국가의 안보로 연결될 것이다."
표씨가 군에 있을 때 '군·관·민'이라는 표현을 '민·관·군'으로 바꾸게끔 애쓴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가 정훈 병과를 자원한 이유도 "민족의 군대로서 국군의 혼을 살리는 일, 우리 군에 고질화한 일본 군대식의 부정적 군대문화를 개혁하여 민주적 군대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민간인이 된 그 숱한 예비역 병장들에게 물어보자. 표씨가 격파한 잘못된 고정 관념들에 적잖이 감염돼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있을까?
일부 언론이 정부를 보는 시각은 별다를까? 수구 신문들의 노 정부에 대한 비판은 다분히 국민에 대한 불신과 멸시를 내포하고 있다. 그들이 '강력한 리더십'을 외치면서 암암리에 박정희의 리더십을 예찬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다 입으론 '자율'이 좋다고 외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몸에 프로그래밍된 '타율'은 일사불란하고 강력한 지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석에서나마 "사람을 죽인 거 빼고는 전두환이 잘 했다"고 큰소리치는 정신 나간 사람들도 많이 생기는 게 아닐까?
개혁이 혁명보다 어려운 건 타율이 아닌 자율에 더 의존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고 책임지려는 국민의 자존심이 전제되지 않고선 개혁은 영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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