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계천 복개도로 아래에 묻혀있는 광교(廣橋)가 청계천 복원 사업에 따라 제 모습을 되찾는다고 합니다. 광교가 언제 생겼다가 모습을 감추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정진·서울 중구 무교동
광교는 일제시대 서울 청계천에 놓여있던 수표교, 오간수교, 영미교, 관수교 등 24개의 다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다리였습니다. 복개 직전의 광교는 길이 12.6m에 폭이 15m나 됐지요. 광교라는 명칭은 광통방에 있는 다리라는 뜻인데, 광통방은 광교가 있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 1가 조흥은행 본점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입니다.
광교는 조선 태조가 수도 한양을 가로지르는 청계천 통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흙으로 처음 만들었습니다. 1410년 홍수가 범람해 광교가 무너지자 태종은 태조의 계비 강씨의 묘인 정릉에 있던 석각 구조물을 옮겨와 광교를 돌다리로 다시 축조했습니다. 기록에는 광교에 우마차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고 해 사람들이 다리를 애용했음을 알수있습니다.
그런데 일제가 군수물자를 신속히 만주로 이송하기 위해 1940년 토지수용비가 필요 없는 청계천(당시 이름은 개천)을 도로로 만들고자 광화문 사거리-광교 구간을 복개합니다. 이에 따라 광교는 자취를 감추게 됐지요.
서울시는 광교를 원래 자리에 복원하면 교통흐름을 방해한다고 보고 원래 자리에서 50m 가량 떨어진 한국관광공사 앞에 복원할 것을 검토 중입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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