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예, 갱사지예. 그것도 갭갱사(겹경사) 아입니꺼." 얼마 전 이희국(40)씨 안사람이 몸을 풀더니, 낼 모레 오십인 이쌍석(48)씨도 늦둥이 딸을 봤다. 마을에서 아기가 태어난 게 기억을 한참 더듬어야 하는 귀한 일인 터에, 한 해에 그것도 둘씩이나 태어났으니 여간한 경사가 아니라는 게 이학수(50) 이장의 설명이다. "이기 다 마을이 잘 될라는 징존기라예." 과묵한 이장의 말수가 많아지나 싶더니 대뜸 휴대폰을 꺼내 든다. "민아가? 이장인데, 오는 길에 정자나무로 막걸리 세 통만 받아 온나. 김치하고 챙겨서.""처녀한테 웬 술 심부름입니꺼?" 술통을 들고 뒤늦게 합류한 군청 직원 석민아(35)씨의 애써 지은 뾰루퉁한 표정도 "이기 누고? 최참판댁 월선이가? 화개장터 옥화가?"하는 주민들의 너스레에 금세 무너지고 만다. 박경리 소설, '토지'의 무대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상평마을의 '진짜 경사'에 관한 취재는 술통이 비워지고, 녹차 한 잔 씩이 돈 뒤에야 어렵사리 시작됐다.
돌담길 복원의 숙원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 형제봉과 전남 광양 백운산이 남북으로 마주보고 섰다. 평사리는 형제봉 자락에 앉은 마을. 넓고 푸진 골에 강이 부려놓은 기름진 퇴적토가 쌓여 형성된, 마을 앞 '무딤이들'이 줄잡아 60만평이다. 너나없이 배 곯던 시절, 겨울 동냥하러 팔도 거지들이 다 모여들던 동네라고 했다. "악양천 들머리부터 집집마다 하루씩 동냥함서 골짜기를 다 돌면 딱 1년 걸린다 캤십니더."
그 마을에 이제 58가구가 남았다. 환갑을 넘긴 고령자가 절반인 112명 주민들이, 석씨의 설명에 따르자면 농촌의 원형질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100년, 200년씩 비바람에 늙어 온 토담집과 담쟁이 얹힌 돌담들이 그 원형질의 형식이라면, 보잘 것 없는 집과 담에 대한 주민들의 애착과 자부심이 그 내용의 한 자락일 터다.
평사의 '사(砂)'가 작은 돌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주민들의 주장처럼 예부터 마을에는 돌이 많았다. 땅 일굴 때 나오는 돌들로 밭 두둑을 다졌고, 마실 다니면서 보는 돌도 집어다 아무네 집 담장에나 얹거나 끼워놓는 게 피를 타고 내려 온 평사리 주민들의 습관이었다.
하지만 70년대 새마을운동과 함께 3치폭 마을 안길을 넓히면서 적지 않은 돌담들이 허물어졌고, 몇몇 집은 한 철 유행따라 사립문 대신 사자 대가리 걸린 철대문을 달기 위해 블록담을 쌓았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그게 아니더라고 했다. "곰보자리 땜질 잘못한 것처럼 정이 안가고, 늙은 할멈 색동옷 입혀논 것처럼 남세스러운 기라요." 마을 위뜸에 '토지'의 최참판댁이 조성(1997∼2002)되면서 관광객들이 찾아 들자 주민들의 몸은 더 달았다. "그래도 우짭니꺼. 다시 돌담을 쌓자니 그것도 돈 아입니꺼." 돌담을 헐고 블록담, 벽돌담장을 쌓는 세태를 거슬러 돌담을 복원하는 일은 그래서, 마을의 숙원이었다.
헌마을 운동은 시작되고
돌담 복원의 기회는 마을 주민 이수환(79)씨 말마따나 "하늘에서 호박이 넝쿨째 굼불져 오듯이" 주어졌다. 한 맥주회사가 창사 70주년을 맞아 벌인 시골 마을 숙원풀이 사업에 이장이 응모해 18대1의 경쟁률을 뚫고 뽑힌 것. "대부분이 마을회관이나 복지센터 건립, 도로 포장 같이 시멘트 바르는 일인데 우리는 멀쩡한 보로꾸(블록) 걷어내고 돌을 쌓겄다니까 심사위원들 눈에 띄였는 갑데요." 이장은 당선 배경을 그렇게 들었다고 했다.
총 지원금 5,000만원 가운데 선수금 2,500만원이 나온 게 지난 달 말. 그 새 주민들은 지난 해 물 난리로 사태 난 안 골에서 덤프트럭 서너 대 분량의 돌들을 구해다 마을 어귀에 부려놓고 장마가 긋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울력이 시작되면 안식구들은 밥·반찬을 져 나를 테고, 오래된 어른들의 지휘하에 젊은 일꾼들이 덤벼들 태세다. 500m 길이의 돌담 보수 및 복원을 평사리 주민들은 '헌마을 운동'이라고 했고, 행여나 내 집 블록담이 대상에서 빠질세라 이장을 만나는 이들마다 '내 집 담, 내 집 담'을 노래 삼고 있었다. "그건 일도 아이다. 우리가 다 돌담 기술자 아이가. 며칠만 바짝 하모 대충 다 될끼다." 칠순 팔순 어른들도 젊은 것들 하는 일이 성에 안차면 하시라도 팔을 걷어부치겠다는 의욕을 돋웠고, 이장은 정작 돌담 쌓는 일보다 어르신들의 의욕이 더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느끼는 관광마을 맹글랍니더"
"전국이 '각자먹기' 시대 아입니꺼. 시골도 살기가 어려워지면서 옛날 인심이 아이라예. 돌담 쌓기를 계기로 우리라도 똘똘 뭉쳐서 촌 맛을 되찾고 싶습니더." 봄 매화·벚꽃철과 여름 휴가철에는 주말 하루 2,000∼3,000명이 최참판댁 구경하느라 마을을 드나들고 있고, 가을부터 모 방송국 '토지' 촬영이 시작되면 관광객이 늘어날 터다. 이왕 관광마을이 된 셈이니, 최참판댁 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볼 거리, 느낄 거리가 되어야 겠다는 게 이장과 마을 주민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전부 거기서 거기인 관광지와 달리 좀 모자란 듯 하지만 정감이 가는 마을을 가꾸자는 것이다.
언덕 위 최참판댁을 나서 돌담 고샅길 끼고 돌면 대봉감 나무그늘 사이로 고향 집들이 나타나고, 고추 모 틈 사이로 야생차와 채소들이 어울려 자라는 꽃밭 같은 텃밭들이 보인다. 주민들은 요즘 반상회 때마다 집집이 나물이며 콩이며 보리도 내놓고, 막걸리 주막에 장터도 열어보자는 의논들이 한창이라고 했다. 그래서 관광객이 찾아 들면 이 골목 저 골목 누비며 농촌 생활도 엿보고 우리 농산물도 사가게 하면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이겠다는 것이다. "장사를 하자는 기 아이라 시골 인심을 느끼고 가라는 기지예."
악양 평사리 상평마을은 '소설 속 마을'보다 더 소설 같은 마을을 꿈꾸고 있다.
/하동=글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사진 홍인기기자
● 재현된 "최참판댁"
최참판댁은 박경리의 소설 토지가 완간(1994)되고도 5년이 지난 뒤에야 터닦기가 시작됐다. 그래서 평사리의 최참판댁은 소설속 가공의 공간을 현실화한 것으로, 지난해 2단계 공사가 마무리된 현재는 2,800여 평 부지에 한옥 14동을 갖춘 전형적인 향반가의 모양새로 우뚝 서 있다.
고증을 거쳐 앉힌 건물 배치나 구조, 구색은 소설의 감흥을 되새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소설에서 담장마다 허드러지게 폈다던 능소화며 석산화는 없지만, 아쉬운 것들은 하나 둘 보완하는 중이었다. 사랑채 누마루에서든 솟을대문 앞에서든 키 작은 마을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전봇대를 제외하면 눈에 드는 인공의 것은 거의 없다. 하동군청은 한전과 협의해 전봇대를 없애고 전깃줄을 매설키로 했다.
한옥은 전기톱으로 마르고 전기대패로 다듬은 새 집이다. 군이 지난 해 행랑채며 안채, 별당채, 사랑채의 들보와 기둥 마루에 들기름을 입혀봤지만 세월이 빚는 손때 맛 땀내 맛을 흉내낼 수는 없다. 드라마 촬영 덕에 방송사 미술팀의 도움을 받아 기와에 이끼도 얹어 볼 참이지만 어떨 지는 두고 볼 일.
그래서 상평마을이, 그 오래된 집들과 돌담들이 빛나는 것인지 모른다. 소설 속 최참판댁과 마을 주민들이 지주와 작인으로 어울렸듯, 평사리 최참판댁과 마을은 서로 보완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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