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강대국의 지도가 바뀌고 있다. 1970∼80년대 최강의 기술력과 생산성으로 세계경제를 주도했던 독일과 일본이 자기혁신을 외면, 21세기 들어 급속히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반면, 한때 쇠락하는 나라로 손가락질을 받던 영국과 미국은 끊임없는 구조조정으로 다시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부활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이들 선진국가의 엇갈린 부침(浮沈)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로 향해 나가는 한국경제에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현장 시리즈를 통해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영국과 독일은 전통적인 유럽의 강국이지만 양국 경제는 지금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99년 1조4,602억달러였던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02년 1조5,557억달러로 급증한 반면 독일은 저성장과 통화약세가 겹치면서 2조1,080억달러에서 1조9,841억달러로 감소했다. 실업률도 영국은 3%대이지만, 독일은 3배 가량 높은 11%에 육박하고 있다.
1990년 이전까지 세계 최강의 경제로 부상하던 일본도 그후 장기불황의 늪에 빠져들며 1989년말 3만8,915엔까지 치솟았던 주가(닛케이 평균지수)가 2003년 7월에는 9,000선대로 주저앉았다. 또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면서 경제규모가 오히려 쪼그라드는 디플레이션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관련시리즈 A3면
이같은 현상은 영국이 80년대초 대처 당시 총리의 규제완화, 민영화, 탈노조화를 시작으로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했지만, 독일과 일본은 낡은 시스템에 집착, 자기혁신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영국은 79년 이후 20여년간 공공, 노동, 금융시장 등에서 끊임 없는 개혁을 진행 중이다. 영국 남동부지역 개발청(SEEDA) 앤터니 더넷 청장은 "최근 10년간 영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4,845억달러에 달한다"며 "이는 영국이 철저한 개혁과 대외 개방으로 세계에서 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같은 기간 한국에 유입된 규모는 379억달러이다.
반면 독일은 주 35시간의 세계 최저 노동시간, 소득의 46%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하는 경직된 복지형 체제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근로의욕과 기업의 혁신성이 약화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경제활동가능인구 중 65.7%만이 일하고 있으며(영국 82.8%), 혁신성 지표인 총요소생산성의 최근 10년간 증가율(연평균1.1%)은 영국(1.5%)의 70% 수준이다.
사정이 다급해지자 독일연방은행이 '성장과 고용이 분배보다 앞선다'며 독일 체제의 전면적 개혁을 촉구했고, 노조가 지지기반인 사민당과 녹색당 연합 정부도 친 기업적인 경제개혁안을 내놓게 이르렀다.
이들의 부침은 '경쟁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영·미식 자본주의가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는 일·독식 자본주의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인정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폐쇄적인 경제보다 개방적인 경제, 경쟁을 제한하는 시장보다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는 시장, 경직된 노동제도보다 유연한 노동제도, 기존 시스템의 유지보다는 혁신을 장려하는 사회분위기를 가진 나라가 그렇지 않은 나라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전반에 혁신과 창의, 공정한 경쟁의 신선한 바람을 끊임없이 불어 넣은 것이 1인당 GDP 2만달러 도약을 노리는 한국 경제가 가야 할 길이다.
/런던=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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