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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엄마 죽기 싫어, 죽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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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엄마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입력
2003.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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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지금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있다. "엄마 살려줘. 죽기 싫어. 죽기 싫어"라고 울부짖는 소리가 우리들의 귓가에 맴돌고 있다.30대의 엄마가 7살, 3살짜리 두 딸을 아파트 14층 계단에서 창문 밖으로 내던지고, 자신도 5살짜리 아들을 품에 안은 채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몇 년 전 남편이 가출한 후 일용직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왔다는 그는 단 네 줄로 된 유서를 남겼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살기 싫다. 죽고 싶다. 안면도에 묻어 달라.> 가 유서의 전부다. 설명도 원망도 없이 그는 "살기 싫다"고 적고 있을 뿐이다. 극도의 탈진상태가 느껴진다.

부모가 어린 자녀들과 동반자살하는 것은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내가 죽으면 저 어린 것들이 어떻게 살아가나, 차라리 데리고 가자 라는 결심 속에는 '내 새끼'의 미래까지 내가 결정하려는 강박관념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 이외에도 최근 몇 건의 동반자살이 있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빚에 쫓기거나 생활고를 못 견딘 부모들이 어린 아이들과 동반자살했다. 진상은 물론 부모가 자녀들을 살해하고 나서 자살하는 것이지 동반자살이 아니다. 무엇이 부모들을 '자녀살해'로 까지 몰아가고 있을까.

궁핍하던 시대의 동반자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풍요로운 시대의 동반자살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열심히 일하면 먹고는 살 수 있고, 부족한대로 영세민 대책도 마련돼 있는데, 왜 동반자살까지 하느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해외 근로자들을 받아들이는 나라인데,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면 뭔가 크게 잘못돼 있는 게 아니냐고 그들은 묻는다.

이번 사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아이들의 비명소리 때문만은 아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잘못 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일하면 밥 먹고 살 수는 있지만, 밥을 못 먹던 시대보다 더 큰 불안이 가득 차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작은 충격이나 역경에도 불안이 폭발하고, 충동적으로 도피하거나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아진다.

무지막지한 경쟁과 소비, 강자와 일류만이 부각되는 세태, 약자에겐 돌파구가 안 보이는 절망, 눈부신 경제 발전에 가려진 빈곤의 대물림 등 이 모든 것이 한 엄마를 광기로 몰고 간 주범이다. 소외된 약자로 살아가는 이 세상이 너무나 힘들어서, 자신이 먼저 미쳐버릴 만큼 공포에 질려서, 그는 세 아이를 이끌고 남의 아파트 14층으로 달려간 것이 아닐까.

많은 약자들은 두려움과 절망으로 이미 탈진해 있다. '일류'의 가치만이 강조되는 세상에서 그들은 자기상실감에 빠져 있다. 자녀들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커녕 자신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도 못 느끼고 있다. 적극적으로 "죽고 싶다"고 느끼지 않더라도 "살고 싶지 않다"거나 "왜 살아야 하나"라는 회의에 빠지기 쉽다.

자녀 교육을 위해 다른 나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이 이 나라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도 불안이다. 끝 모르게 치닫는 경쟁 아닌 경쟁, 일류 아닌 일류 만들기의 압력,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해방되려는 것이 교육이민의 목적이다.

어쩌다 우리 나라가 이렇게 되었는가. 모두들 불안해서 떠나고 싶은 곳이라면 병든 사회다. 병든 사회에서는 병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엄마는 아파트 계단에서 아이들에게 "같이 죽자"고 설득했고, 아이들은 "죽기 싫어. 살래. 죽기 싫어"라고 울면서 호소했다. 그러나 엄마는 이 살벌한 세상에 차마 아이들을 두고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행동은 '미친 짓'이었지만 그 마음을 이해 못할 부모가 있겠는가.

우리 사회의 중심을 바로 세우고, 중요한 가치를 되살리는 일이 시급하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책, 그들을 돕는 시민운동, 사회적 병리를 치유하는 기능 등이 확대되어야 한다. "죽기 싫어, 죽기 싫어"라고 울부짖는 아이들과 탈진한 그 엄마를 부둥켜 안고 "같이 살자. 같이 살자"라고 힘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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