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군사학 시험으로 선발한다면 합격할 자신이 있습니다."중견기업 부사장이 전문 사학자 못지않은 수준급 전쟁 서적을 잇달아 출간, 화제가 되고 있다. 목재전문기업 이건산업의 권주혁(權主赫·51) 부사장이 주인공.
권 부사장은 한국전쟁 당시 울산 앞바다에서 북한군 특수부대 함정을 격침시킨 '백두산함'에 관한 책 '바다여, 그 말하라'를 지난달 출간했다. 200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남태평양 일대의 미·일 전쟁과 강제징용된 한국인의 애환을 다룬 역작 '헨더슨 비행장'을 출간한 지 3년 만이다.
이번에 출간한 책은 그 동안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비화를 담고 있다. 1950년 6월26일 미군 상륙을 막기위해 부산에 침투하려던 600여명의 북한군 특수부대를 실은 수송선을 남한의 백두산함이 울산 앞바다에서 6시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격침시킨 역사적 사건을 기술하고 있는 것. "당시 우리 해군이 북한군을 막지 못했다면 미군이 부산을 포기, 한반도가 공산화됐을지도 모릅니다."
권 부사장은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를 고증하고 구석구석을 발로 뛰어 당시 전황을 '분' 단위까지 생생하게 묘사,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르고 있다.
"정확한 사실 관계를 등한시한 채 '감상적 민족주의'에 젖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역사를 공부할 때 빠지기 쉬운 맹점이자 우리 교육의 문제라고도 봅니다. "
권 부사장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수백 여권의 서적과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당시 관계자들을 수소문해 증언을 청취했다. 한국전 참전해군 출신을 비롯해 미국·러시아 군사전문가들을 접촉,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귀중한 군사자료를 입수하기도 했다. 앞서 출간한 '핸더슨 비행장'도 당시 전쟁터였던 남태평양 솔로몬 군도에서 20년 사업 생활을 바탕으로 집필한 것.
"요즘은 저에게 군사 정보와 자료를 주었던 외국 사학자들이 거꾸로 저한테 정보를 얻어 가기도 하지요."
권 부사장은 직업군인도 역사학자도 아닌 경영인이지만 그의 지식과 안목은 이미 아마추어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쟁 관련 만화책을 읽은 것을 시초로 군사학에 매료된 그는 육사 입학을 꿈꿨지만 독실한 크리스천이라 일요일에 실시된 육사 입학시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서울대 농대에 입학한 후에도 군사학 공부에 매달려 졸업 즈음에는 국내에서는 더 이상 읽을만한 책이 없을 정도가 됐다. 이후 외국을 돌아다니며 군사서적을 구해 읽는 것이 취미가 됐고 지금 그의 서재에는 2,000여권의 군사서적이 있다.
"남은 소망이 있습니다. 조속히 중부, 서부 태평양 전쟁 관련 서적을 출간하는 것입니다."
한·미·일 3국의 옛 군인들과 가족들이 고령으로 속속 세상을 떠나고 있기 때문. 권씨는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생생한 증언을 듣고 필요한 자료를 얻어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한 '영웅'들의 일화를 좀 더 진실에 가깝게 복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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