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네트워크 지음 한겨레신문사 발행·9,000원간디가 히틀러 비슷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너무도 낯설다. 비폭력주의로 영국 제국주의에 맞선 성인과도 같은 존재에게 독재의 혐의를 씌우다니. 하지만 이름난 핵 전문 칼럼니스트로 '타임스 오브 인디아' 편집장을 지낸 프라풀 비드와이는 간디에게 히틀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고 단언한다.
그에 따르면 간디는 스스로 주장했던 이상과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문제에서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성적 욕망 억제'라는 지독한 강박 관념에 시달렸던 그는 매혹적인 젊은 아가씨를 옆에 재우면서 어떻게 자제했는지를 장황하게 묘사하며 금욕주의를 설파했다. 비종교주의를 내걸고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화해를 주장했지만 정작 자신의 아들이 이슬람 여성과 혼인하겠다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종교적 관용을 설파하고 빈곤층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지만 그는 결코 종교적·세습적 계급제도의 타파를 시도하지 않았다. 간디의 '무소유' 철학이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계급 조화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동안 제조업자들의 부는 팽창했지만 그 무소유를 실천한 노동자들은 빈털터리 신세가 되고 말았다. 비드와이의 결론은 '간디는 자신의 철학을 실행하기 위해 태생적 신분제가 지배하는 인도의 불평등 계급주의적 사회구조를 은폐했거나 적어도 무시해 버렸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2000년 9월부터 주간지 '한겨레 21'이 게재하고 있는 '아시아 네트워크'의 기사를 간추려 묶은 것이다. 아시아 20여 개 나라 언론인과 민주화 운동가를 하나로 묶어 각국 소식을 발굴한 이 네트워크는 국내 초유의 신선한 언론 실험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간디 이야기말고도 필리핀 '피플 파워'의 기수 아키노의 허구성, '킬링 필드'의 원죄자인 크메르 루즈에 대한 오해 등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시아 역사와 지역 분쟁을 완전히 새롭게 보이게 한다.
네트워크에는 40여 곳의 분쟁 현장을 직접 취재한 한국의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를 비롯해 캄보디아 크메르 루즈의 폴 포트를 처음 인터뷰해 국제사회에 알린 일본의 나오키 마부치, 인도네시아 최대 시사주간지 템포의 기자인 아흐마드 타우픽이 포함돼 있다. 또 파키스탄 언론자유운동을 주도해온 아프가니스탄 전문가 라히물라 유수프자이, 세계적 핵문제 전문 칼럼니스트인 인도의 프라풀 비드와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 감옥을 드나들며 '언론자유 영웅상'을 받은 팔레스타인의 다우드 쿠탑 등도 참여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태국 미얀마 등 각국의 민주화 투쟁의 이면, 이스라엘과 중동 각국, 인도와 파키스탄 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고 동남아 성 문화를 통해 여전히 뿌리 깊은 남녀 차별의 문화와 빈부 갈등을 되짚고 있다.
'내릴 수 없는 깃발'이라는 부제를 단 책의 마지막 편은 특별 기고로 꾸며져 있다. 동티모르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사나나 구스마오가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에 참여해 무장 독립투쟁을 한 이야기, 군사독재 타도를 외치며 무장투쟁한 미얀마학생민주전선 지도자 니잉옹, 그리고 어릴 때 사고로 사지가 마비되었지만 휠체어에 의지한 채 팔레스타인의 대 이스라엘 독립투쟁을 이끌고 있는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 아흐마드 야신이 쓴 자전적 기록을 모았다.
'이스라엘 군수사관들은 내 아들을 데려와서 내가 보는 앞에서 거의 죽음에 이를 때까지 갖은 폭행과 고문을 해댔다.…숨이 넘어가며 눈꺼풀이 뒤집히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다짐했다. …지독하고 야만적인 고문, 죽어 가는 아들을 통해 나는 팔레스타인 모든 아이들을 생각했다.' 야신이 전하는 투쟁의 고통에서 보듯 책에는 서구 언론의 눈을 통해서만 아시아를 이해해 온 우리의 인식을 뛰어넘는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가깝지만 자세한 사정에 어두웠던 우리 이웃들을 다시 보려는 시도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