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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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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입력
2003.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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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내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나의 전공은 이론화학으로 자연과학 분야에 속한다. 그래서 어쩌면 좀 뜻밖으로 여겨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는 각자의 전공을 가릴 것 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어볼 만한 수많은 의문들이 담겨 있다. 그것도 그냥 나열식으로 되어 있는 게 아니다. 거장의 손길 아래 이제라도 눈앞에 튀어나올 듯 생생하게 묘사된 인물들의 삶 속에 펼쳐져 있다. 따라서 이야기를 읽어 가노라면 참으로 절실한 심정에서 그런 문제들을 비춰보게 된다.도스토예프스키의 인생은 그 자체가 한 편의 소설처럼 극적이다. 그의 아버지는 욕심쟁이 지주였다. 그런데 농노들을 어찌나 가혹하게 대했던지 도스토예프스키가 아직 10대였을 때 그들에게 무참하게 맞아 죽었다. 그리고 20대에는 사회주의에 탐닉하다가 비밀 결사를 조직해 활동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사형이 막 집행되려던 순간 황제의 특사로 살아났다. 당시의 공포가 얼마나 컸던지 같이 형장에 갔던 한 사람은 평생 미치광이가 되었다고 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후 문학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매우 불안정한 성격과 낭비·도박벽 때문에 평생 쪼들리며 살았다. 심지어 빚 때문에 외국으로 피신해 4년 동안 떠돌기도 했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가 남긴 마지막 소설이다. 57세에 시작해 3년간 썼는데 이를 마친 이듬해에 죽었다. 다행히 이 기간에는 비교적 여유 있게 지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소설 속에 그의 가장 원숙한 풍모가 스며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이 소설이 잡지에 연재되는 동안 그는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았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소설가로 꼽히고 있다.

이 소설은 내용과 분량의 방대함과 달리 이야기 자체는 비교적 단순하다. 러시아의 한 시골 도시에 사는 까라마조프 가족 안에서 발생한 친부 살인 사건을 다룬다. 따라서 그 참된 가치는 거기에 제시된 수많은 철학적 문제와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심리묘사에서 찾을 수 있다. 철학적으로 그는 후일 니체를 통해 연결되는 현대의 실존주의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편 심리학적으로는 프로이트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그 내용은 조금 생경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책을 손에 들면 강력한 흡인력 때문에 다 읽기 전에는 빠져 나오기가 어렵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뿌리 없는 나무도 없다. 이와 같은 불후의 고전을 통해 21세기를 사는 우리 정신 세계의 직접적 근원을 탐색할 수 있음을 커다란 행운으로 여기며 누구든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고 중 숙 순천대 과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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