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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정록을 찾아서

입력
2003.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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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재 지음 푸른역사 발행·2만5,000원14세기 초 원(元)의 수도 연경에 있는 사설 도서관 만권당(萬卷堂). 고려 충선왕이 1314년 자신의 저택에 만든 이 도서관에서 중국 학자들과 문인들이 둘러 앉아 시 한 편을 감상하고 있다. 후대에 서화로 이름을 남긴 한림학사승지 조맹부를 비롯해 원나라 집현학사, 규장각학사 등 글 꽤나 한다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편히 앉아서 어떻게 남자의 뜻을 펼칠까(安坐豈像男子志)/ 먼 여행에 노친 염려를 떨칠 수가 없구나(遠遊還愧老親思)/ …마을의 나무는 아스라하고 해는 뉘엿뉘엿(村樹茫茫日下遲)/ 조만간 돌아와 밝으신 임금님을 뵈어야지(早晩歸來報明主)/ 닭 잡고 더운 밥 지어 친구들을 맞아야지(却尋鷄黍故人期)'

평성 '지(支)' 운을 쓴 이 칠언율시는 고려 말 유학자 익제 이제현(1288-1367)이 연경에서 남쪽으로 50㎞ 떨어진 정흥이라는 곳에서 써서 급히 부쳐 보낸 글이다. 익재는 중국 서부 어메이산(峨眉山)에서 열리는 산신제에 원 황제의 특사로 가는 길이었다. 원나라 특사로 왜 고려 문인이 먼 길을 나섰을까? 익재는 왜 이 길에서 시를 지어 황급히 연경의 만권당으로 보냈을까?

교통사정도 변변치 않을 당시 익재가 그 험한 길에 나선 것은 고려와 원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충선왕의 외교 전략과 밀접히 관련된 것이었다. 국력이 가장 취약한 시기에 옥좌에 오른 충선왕은 당시 세계 제일의 도시이며 이른바 '팍스 몽골리아나'의 중심이었던 연경에 고려의 높은 문화 수준을 소개해 친(親) 고려 여론을 형성하려는 생각을 가졌다. 당대의 문장가 익재가 적임자가 아닐 수 없었다.

충선왕은 문장력이 출중한 익재의 기행시를 만권당에서 받아 들고, 원나라 학자·문인들을 초대해 감상하고 이야기 나눴다. 조맹부를 비롯한 원의 학사들은 익재의 박학다식과 뛰어난 문재를 이미 알고 있던 터여서 그의 중국 대륙 기행시를 미쁜 마음으로 반겼을 것이다.

지영재 전 단국대 교수는 이 책에서 익재가 그런 이유로 10여 차례 중국 기행을 하며 남긴 시를 현장을 더듬어 가며 확인하고 해설했다. '익재집'에 수록된 시 가운데 기행과 관련된 134수를 뽑고, 역시 같은 소재의 장단구 54수를 더했다. 익재가 중국 대륙을 밟아간 여정을 꼼꼼하게 자료로 정리하고, 현장에서 느낀 감상을 군더더기 없이 날렵한 문체로 솜씨 좋게 풀어 나갔다.

익재가 처음 연경에 간 것은 27세, 거듭된 대륙 장정을 마친 것이 36세이니 그는 10년 청춘을 중국 땅에서 보냈다. 장정한 거리만 4만350㎞다. 저자는 1996년부터 7년 동안 익재의 여정을 따라 중국을 기행했고 베이징을 시작으로 그가 둘러본 곳은 익재가 거친 곳의 90%에 이르는 90곳 이상이었다.

지 전 교수가 풀어 쓴 익재 시의 핵심 주제는 떠나온 님(임금)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이다. 특히 충선왕이 티베트에 유배된 뒤 왕을 보기 위해 떠나며 익재는 '님의 은혜 만에 하나 갚지 못했으니/ 만 리 넘어 달려가기 어렵다 말하랴/…두 줄 맑은 눈물이 안장에 떨어진다'고 읊었다. 이 밖에도 익재의 시에 담긴 여행의 어려움, 벗들을 기리는 마음, 대륙의 빛나는 풍광 등이 발 품을 들인 저자의 수고와 드문 글 솜씨에 힘입어 생생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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