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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성형 수술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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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성형 수술의 문화사

입력
2003.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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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 L 길먼 지음·곽재은 옮김 이소출판사 발행·2만5,000원"어쩐지 몇 달 안 보인다 했더니 완전히 뜯어고쳤네" "저것 봐, 코가 피노키오처럼 됐어" 여자 연예인들이 한 동안 눈에 띄지 않다가 TV 화면에 나오면 십중팔구 얼굴 어딘가가 눈에 띄게 바뀌어 있다. 코를 높이고 젖가슴을 키우거나 주름을 펴는 것은 너무 일반적이다. 투박하거나 다소 못 생긴 것이 트레이드 마크인 연예인들은 아예 얼굴 전체를 영구 변장한다. 미국 여배우 데미 무어는 얼굴이나 가슴만으로 모자라 '전신 성형'을 하고 최근 새 영화에 출연했다. 남자도 요즘에는 얼굴에 손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따르면 2001년 한해 동안 미국에서 이뤄진 성형 수술은 모두 850만 건. 전년에 비해 48%나 늘었으며 시장규모가 무려 70억 달러(약 8조7,000억원)에 이르렀다. 가장 인기가 큰 것은 한 번 시술에 평균 2,947달러(약 354만원)이 드는 코 성형으로 전체의 16%나 된다. 그 다음이 유방 확대 수술(약 365만 원), 한 번 맞는데 40만원이 드는 콜라겐 주사 순이다.

성형 열풍이 미국에서만 부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독일은 15%, 영국은 30% 각각 시장규모가 커졌다. 해외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한국의 사례를 포함해 아시아 시장도 해마다 20%씩 커지고 있다. 성년을 넘긴 여성 치고 다친 흉터를 없애고 얼굴을 정상으로 복구하기 위한 재건 성형이 아닌 미용 성형을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성형의 범주에는 모발 이식도 포함되니 남자라고 예외가 아니다.

시카고 일리노이대 석좌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서구 문화와 양의학을 중심으로 성형의 문화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유럽과 미국 중심의 성형문화사이지만 어차피 지금의 성형이 서양의학에서 꽃핀 것이니 내용에 한계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저자는 의학사에만 치중하지 않고 '작은 아씨들' 등 다양한 문학 작품을 인용해 가며 성형의 문화사적 배경을 살피고 있어 그 풍부한 내용을 높이 살만하다.

16세기 말 유행성 매독으로 함몰한 코를 세우기 위해 처음 등장한 미용 성형이 19세기를 거치며 대유행하게 된 데는 '통과 의례'라는 사회적 욕구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길먼은 주장한다. 스스로 동일시하는 집단의 일원에 소속됨으로써 인정 받거나 최소한 '타자'가 되지 않으려는 본능에서 성형에 매달리는 이유를 찾은 것이다.

신체를 바꿈으로써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은 새로운 사회의 시민으로 변화하는 이민의 구도와도 통한다. 개인은 달라지고 행복해질 수 있으며 미용 성형 수술은 우리의 몸을 새롭고 행복한 신체로, 새로운 사회의 기대 요건을 충족시키고 이 기대가 달라질 때마다 함께 달라지는 신체로 바꾸어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성형이 준거 집단에 동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은 매우 너그러운 것이다. 냉정히 말하자면 신체에 대한 이런 분류법에는 차별, 특히 인종이나 계급과 관련한 결속과 배제의 사회문화적 음모가 깔려 있다고 저자는 본다.

유럽에서 매독 환자로 대표되는 내려앉은 코는 도덕성의 타락을 보여주는 징표였다. 매독과는 무관하더라도 비정상으로 코가 낮은 사람이나 작은 코를 가진 이민족은 쉽게 하위 계층으로 분류됐다. 국제 교류가 증가하기 시작하는 19세기가 되자 코는 더욱 미와 인종 차이를 가르는 기준이 됐다. 흑인의 코는 미개한 본성을 나타내는 증거이며, 아시아인의 납작한 얼굴과 치켜 올라간 눈꼬리 역시 같은 식으로 여겨졌다.

일본 인류학자들이 19세기에 아이누족의 긴 코와 둥근 눈을 과장해서 묘사한 것도 그들을 미개인으로 격하하려는 정치적 욕구가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2차 세계대전 중 나치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임무 수행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입대 예정자의 신체를 개조하는 조항을 승인하기까지 했다.

현대로 올수록 성형에는 '에로틱'이라는 성적 의미가 덧붙여졌다. 19세기 후반까지 대부분의 성형은 미개의 징표로 여겨진 튀어나온 엉덩이와 큰 가슴을 작게 만드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이런 성형 범주의 우열 관계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진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뚱뚱한'은 어떤 시대와 장소에서는 부유함의 징표로 긍정적 가치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건강하지 못함을 뜻하는 부정적 가치를 지닌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외적인 신체가 영혼의 가치를 반영한다는 사람들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고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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