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의 스타는 단연 북한 미녀 응원단이었다. 그들의 빼어난 미모와 발랄한 모습에 대한 호기심은 '북녀 신드롬'을 일으켜 인터넷에 팬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나기도 했다. 그 열기는 곧 북핵 위기란 현실에 묻혀버렸지만, 그네들의 순수한 얼굴은 마음속의 '휴전선' 그늘을 한꺼풀 벗겨낸 값진 기억으로 남아있다.그 추억을 소재로 '남남북녀'의 사랑을 그린 MBC 정전 50주년 특집 드라마 '2003 신(新) 견우직녀'(연출 최이섭)가 18일 밤 9시55분 방송된다. 남북한 젊은이의 사랑 이야기는 1995년 SBS 특집극 '해빙'에서 곧 개봉하는 영화 '남남북녀'까지 적잖이 다뤄졌다. 그러나 '신 견우직녀'는 사하라사막(영화 '인샬라')이나 옌볜('남남북녀') 등 이국이 아닌 바로 이 땅을 무대로, 온 국민이 공유한 따뜻한 기억에 기대어 이야기를 풀어내 좀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평양무용대학 출신의 재원 리연정(최강희)은 "남한의 친아버지를 꼭 찾으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가슴에 담고 북한 응원단의 일원으로 부산에 온다. 우연히 그 비밀을 알게 된 스포츠신문 기자 신태영(류수영)은 특종 욕심에 연정을 돕는다. 규율을 어겨 감금 당한 연정은 만경봉호를 탈출해 태영과 함께 아버지를 찾아 나서고, 너무도 다른 사고방식 탓에 사사건건 부딪치던 두 사람의 가슴 속에는 어느새 사랑이 싹튼다.
큰 줄기는 애절한 사랑이지만 남한 '신세대'와 북한 '새 세대'가 마음의 벽을 허물고 한 발짝씩 다가가는 과정을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를 엮어 경쾌하게 그린 점이 돋보인다.
'맹가네 전성시대'에서 커플로 호흡을 맞췄던 최강희와 류수영의 차분한 연기도 인상적이다. 특히 귀순배우 김혜영의 도움을 받아 북한 말을 익혔다는 최강희는 순수하면서도 다부진 북한 처녀를 잘 소화했다. 15일 시사회에 참석한 이들은 "당시 자료화면을 꼼꼼히 챙겨본 것이 큰 도움이 됐다"면서 "마치 수학여행 온 여학생처럼 발랄한 북한 응원단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구나 하고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드라마는 연정의 부모가 그랬듯 두 사람도 보안요원에 붙들려 이별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1년 후에도 태영이 준 장난감 반지를 끼고 있는 연정을 비춘 마지막 장면은 희미하지만 놓을 수 없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실제 상황이라면 두 연기자는 어떤 심정일까. "소주 한 잔 마시고 잊으려 하겠죠. 하지만 어떻게 잊겠어요? 여든이든, 아흔이 되어서든 통일이 되면 꼭 찾아야죠."(류수영) "통일은 아직 멀게만 느껴져요. 하지만 희망을 잃지는 않을 거예요."(최강희)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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