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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가난한 나라도 생각하며

입력
2003.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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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요하네스버그 세계정상회의 비정부기구(NGO)회의장에서 가난한 흑인농부를 만난 적이 있다. 그 농부는 나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성공한 나라 사람으로부터 농사짓는 방법에 대해 배우고 싶다. 한국은 경제개발에 성공해서 선진국이 된 나라가 아니냐. 여기 온 한국인 중에 그 분야에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게 해 달라."이 회의에는 한국 NGO에서 무려 300명 정도가 참가했었다. 그러나 이 가난한 흑인농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한국인은 아무도 없었다.

지난 월요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특이한 토론회가 열렸다. 요즘 토론회만 열렸다 하면 으레 나오는 노사문제나 북핵같은 뜨거운 현안이 아니라, 우리 보다 못사는 개도국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하는 공적개발원조(ODA)를 주제로 한 모임이었다. 토론 내용을 들으면서 요하네스버그에서 만난 그 흑인농부의 아쉬워 하던 표정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지금 우리 사회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의 벽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 대부분 나라들은 한국을 부럽게 바라본다. 유엔의 통계를 보면 하루 생활비가 1달러(1,200원) 이하인 사람이 세계 63억 인구의 20%인 12억명이다. 2달러 이하는 30억명이 넘는다. 이들은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명의 혜택에서 거의 소외되어 있다.

우리는 아직도 선진국의 범주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라는 생각보다 개도국이라는 인식 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세계인들은 각종 통계를 보며 우리를 달리 생각한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12위, 선박 건조량 2위, 전자제품 생산량이 3위, 자동차 생산량 5위, 철강생산량은 6위이니 그럴 만하다.

미국과 일본 같은 나라와 비교하다 보면 불만은 커진다. 그러나 가난한 주변국과 비교하면 우리의 경제규모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된다. 몽골에서는 한국에 진출한 자국 노동자의 본국송금이 그 나라 경제에 10%의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몽골인이 한국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사는지 우리에게는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관심거리도 아니다. 그만큼 우리 경제는 크다.

국제사회에서는 성장한 만큼 못사는 나라를 도와줘야 한다는 여론과 규범이 형성되어 있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도 빈곤을 해결해야 하지만, 세계평화와 환경보전을 위해서도 빈곤해결이 선결 과제이기 때문이다.

못사는 나라를 도와주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개발원조다. 유엔은 개도국에 대한 무상원조와 차관 중에서도 무상원조의 효과를 가진 일정부분을 합쳐서 한 국가의 개발원조 규모로 정하고, 1992년 리우 지구정상회의에서 개발원조의 목표치를 국민총소득의 0.7%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목표를 달성한 국가는 덴마크 등 북구 몇 나라뿐이다. 미국은 0.11%이고 일본은 0.23%에 머물고 있다.

한국의 개발원조는 작년 2억8,600만달러로 국민총소득(GNI) 대비 0.06%이다. OECD 회원국 평균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경제규모는 우리보다 훨씬 작고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한 그리스 뉴질랜드에 비해 우리의 개발원조는 너무 인색하다. 또 원조내용도 무상이 6,700만달러(31%)밖에 안 된다. 이대로 두면 이기적 국가로 낙인 찍히게 될지 모른다.

개발원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정리할 때다. 우리는 개발원조의 혜택을 입으면서 빈곤에서 벗어나서 산업국가로 성장한 나라다. 개도국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고, 어떻게 돕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잘 이해할 위치에 있다. 그래서 개도국은 한국의 도움을 더욱 값지게 생각한다.

또 우리는 해외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국제교역, 특히 개도국과의 무역에서 큰 혜택을 얻고 있다. 따라서 개발원조는 한국의 경제적 미래를 위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정부와 국회는 개발원조 확대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또 정부는 개발원조가 잘 쓰이게 제도와 운용의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일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sjkim@hk.co.kr 김 수 종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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