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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민간이 만든 국가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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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민간이 만든 국가비전

입력
2003.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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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이 정부의 새로운 국가비전으로 채택됐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무척 놀랐다.성장과 분배를 동렬에 놓고,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 균형 성장을 추구하겠다던 참여정부가 성장 일변도의 박정희 정권 시절을 연상시키는 1인당 국민소득 목표를 최고의 국가전략으로 수용한 것이 뜻밖이었다.

더구나 2만달러 구상은 정부에서 나온 아이디어도 아니고, 삼성그룹에서 발제한 것이기에 이를 국가전략으로 삼는 것 자체가 정부로서는 여간 체면이 상하는 일이 아니다. 이전까지 정부가 국가비전으로 삼아온 동북아경제중심 전략은 2만달러를 달성하기 위한 5대 하부 실천전략의 하나로 '격하'됐다. 민간의 제안을 국정목표로 적극 수용한 개방성은 높이 사야 겠지만, 국가비전을 민간에서 차용해야 할 만큼 이 정권의 국정철학이 빈곤했나 싶어 씁쓸하기도 하다.

2만달러가 국가비전으로 등장한 과정은 조금 과장한다면 '밑으로부터의 혁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정권이 출범한 지 벌써 5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과연 참여정부가 국가를 어떻게 이끌어 가고, 어디로 가려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가 깊어 가기보다는 의문과 불안이 짙어가는 분위기다. 국가운영의 분명한 원칙을 제시하고, 국가 미래에 대한 선명한 청사진 제시를 통해 국민 역량을 결집시켜야 할 정부가 지금까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사문제, 대북문제, 대규모 국책사업 처리과정에서 혼선과 시행착오를 거듭함으로써 신뢰를 잃어갔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급락이 보여주듯 참여정부에 대한 뜨거운 기대는 차가운 실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미래에 대한 위기감은 경제계에서 특히 심각하다.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한국경제의 성장을 이끌어온 성장엔진이 식어가는데도 리더십 부재 속에 계층간, 노사간, 이해집단간 대립과 반목이 분출하면서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과 고용을 위해서는 기업들의 투자가 필수적이지만, 기업들은 국내에 있는 공장조차도 해외로 옮기고 있다.

이른 시일내 이런 구조를 타개하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는 남미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선진국 진입에 실패, 영원히 변방국가로 밀려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민심의 밑바닥을 흐르는 이러한 절박한 위기감이 민간기업이 던진 2만달러라는 화두에 대한 전폭적 지지로 나타났고, 급기야 정부가 이를 수용해 국가비전이 되게 이른 것이다.

물론 2만달러는 외형적 성장의 결과일 뿐, 그 자체가 국가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풍요롭게 하는 질적 성장이 목표가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2만달러라는 목표는 총체적인 선진 경제의 달성과 같은 의미여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란 외형뿐 아니라 국가의 제도와 인프라, 기업의 투명성, 삶의 질 등 모든 면에서 중진국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2만달러 국가비전은 완성형이 아니다.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실천전략이 뒷받침 되어야만 비전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실천전략을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좌고우면 하지 말고 그 실천전략에 따라 국가역량을 총결집시켜야 한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배 정 근 경제부장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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