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결코 '미안해'라고 말하는 게 아니야." 백혈병을 앓고 있는 긴 생머리의 청순한 제니가 예일대 법대생 올리브의 품에 안겨 눈물이 얼룩진 얼굴로 잔잔하게 읊조린 대사였다. 1970년대 우리 청춘남녀의 눈물을 쏙 빼놓았던 아서 힐러 감독의 영화 '러브 스토리'의 한 장면이다.80년대 이 땅에서는 '러브 스토리'의 이 대사에 필적할 만한 명 대사가 탄생했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만화 주인공 까치가 한 말이다. 제니의 청순가련형 사랑이, 주먹을 불끈 쥔 터프가이의 순정으로 리메이크된 셈이다. 이 대사는 만화에서 출발해 영화(이장호 감독), 대중가요(가수 정수라)로도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바 있다.
82년 발표된 이현세(49)의 '공포의 외인구단'은 프로 야구단에서 퇴물 취급 받던 선수들을 스카웃한 손병호 감독이 무인도에 이들을 데리고 가 처절하고도 냉혹한 조련으로 마침내 한국 프로야구사의 최강팀으로 거듭난다는 '힘의 만화'다. 그 속에 남자 주인공 까치와 엄지의 가슴저린 사랑이야기가 마치 수채화처럼 그려지면서, 멜로 드라마적 요소를 물씬 풍긴다. 마동탁의 아내가 된 엄지를 향한 까치의 일편단심 사랑. 누가 보아도 '불륜'이지만 까치는 끝까지 '남의 아내'인 엄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만화내용은 당시의 우리 만화창작 현실을 감안할 때 상당히 의외였다. 80년대 우리 만화 판은 법적으로 성인만화의 출판이 완전히 금지된 '어린이 만화'시대였고, 아동들에게 유해한 만화를 원천 봉쇄한다는 명목으로 정부 기관이 만화원고를 사전심의에서 일일이 수정, 삭제하던 때였다. 어쨌든 '공포의 외인구단'은 어린이 만화로 분류돼 만화방에 깔렸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어린이가 보아서는 안 될 내용으로 가득했다. 당시 검열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가 만화내용이 너무 재미있어서 심의를 하기보다는 다음 편을 애타게 기다리는 독자가 되고 말아 미처 원고 교정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어린이 만화'인데도 성인 독자가 만화방에 뻔질나게 드나들게 만들어 '제 2의 만화방 전성기'를 부르기도 했다.
이 만화는 우리 만화사에서 몇 가지 의미심장한 기록을 낳았다. 무엇보다 '만화매체가 여타 대중문화 영역을 리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스토리가 탄탄하고 제대로 된 그림으로 이를 받쳐주는 만화라면, 영화와 가요 등 여타 대중문화의 창작 소스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공포의 외인구단'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공포의 외인구단'이후 만화 '비트'(허영만 작)가 영화로도 빅 히트한 것이 좋은 사례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이현세의 이름을 널리 알려 '스타 만화가'로서 그의 진면목이 드러낸 계기가 되기도 했다. 헌칠한 체격에 미남형 얼굴이어서 한동안 CF모델로도 최고인기를 구가했다. 서라벌예술대(현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중퇴하고 만화가의 길을 걸었던 그는 "순정만화가 나하나 선생의 문하생 시절 다락방에서 기거하면서 저녁 나절이면 신촌역 부근을 어슬렁거리며 담배꽁초를 주워 피웠던 기억도 있다"고 회고했다.
/손상익·한국만화문화연구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