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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명월/두 사나이 우정 가르는 칼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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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명월/두 사나이 우정 가르는 칼의 절규

입력
2003.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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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척의 배로 이은 한강 주교(舟橋) 위를 장엄하고 화려한 어가행렬이 지나는 순간 홀홀단신의 자객이 칼 한 자루를 들고 두꺼운 호위대의 방어막을 뚫는다. 왕의 목을 겨누는 그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어가의 치장을 비롯해 소품 하나 하나에도 공을 들여 구현한 17세기의 풍경이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대한 스펙터클을 이룬다. '청풍명월'은 피바람이 사납게 몰아치던 인조반정기, 운명을 함께 하기로 한 두 사나이의 기구한 우정을 무겁게 다룬 액션물이다. '북경반점'(1999) 이후 오랜만에 돌아온 김의석 감독은 최민수와 조재현 두 배우를 전면에 내세워 승부를 걸었다.

'청풍명월(淸風明月)'은 가상의 특수부대로 조선시대 엘리트 무관 양성소이다. 청풍명월 안에서 지존을 다투는 지환(최민수)과 규엽(조재현)은 생사를 함께 하자는 결의를 다질 정도로 우정이 두텁다. 수련을 마친 뒤 규엽과 지환은 각각 국경과 궁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길을 간다. 그러나 인조반정은 두 사내의 운명을 흔들어 놓는다. 규엽은 반정군에게 잡힌 후 소속 부대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배신에 가담한다. 이제 규엽과 지환은 반군과 정부군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5년 후 신출귀몰한 자객이 칼 한 자루로 반정의 공신을 차례로 주살한다. 조정은 규엽에게 자객을 잡을 것을 명하지만 자객의 행방은 묘연하다. 자객이 지닌 칼에 '청풍명월'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게 단서의 전부이다. 결국 규엽과 자객은 운명을 건 사투를 벌인다. 문제의 칼잡이는 인조반정 때 규엽의 칼날을 맞고 쓰러진 지환이다. 우정이냐 충성이냐는 물음 앞에서 규엽과 지환은 옛 맹세를 되새긴다.

제작비 80억원을 들여 만든 야심찬 대작인만큼 700벌의 갑옷과 700정의 무기를 비롯, 취타대를 앞세우고 1,500명의 엑스트라와 20마리의 말을 투입한 한강주교 어가행렬 장면 등이 장관이다. 그러나 둔중하고 묵직한 화면이 리듬의 변화 없이 나열되고, 어두운 조명과 과도하게 힘을 앞세운 액션이 단조롭게 반복되는 바람에 영화는 제 매력을 충분히 뿜어내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하늘을 향해 치솟은 대나무 숲과 폭포 등 수려한 경관도 덩달아 답답해 보인다.

영화의 최대 매력이어야 할 최민수와 조재현 두 배우의 앙상블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매서운 눈매와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두 배우의 기(氣)가 넘친 나머지 관객들이 숨쉴 수 있는 여백이 모자라다. 두 배우는 사력을 다해 연기하지만 시대극이라는 갑옷은 그들을 단단한 형식주의에 가둬 버린다. 뻣뻣한 문어체 대사, 화살 세례를 받고 입으로 쉴 새 없이 피를 토해내면서도 칼을 휘두르는 과장된 영웅주의도 부담스럽다. 위대한 사나이들의 우정이라는 마초적 주제도 진부한 감이 있다. 16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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