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장마 뒤 계곡 물 소리가 폭포수 떨어지듯 들리는 깊은 산 속 산장의 밤, 두고 온 도시에 대한 모든 생각이 머리에서 까맣게 사라졌을 때.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모래 사장에 누워 바로 내 얼굴에 쏟아질 듯 별이 떠 있는 밤 하늘을 올려다볼 때. 저녁을 먹고 식구들이 저마다 할 일을 찾아 방으로 들어간 후, 초록이 우거진 동네 공원에서 산책할 때. 그리고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책 등 주의를 빼앗아 갈 아무 것도 없는 방에서 혼자 자려고 누웠을 때. 이럴 때 나는 저절로 마음이 열리고 나 자신과 세상과 그리고 삼라만상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그러나 열린 마음만으로는 너무 고요하고 밋밋해서일까. 미셸 르미유가 쓰고 그린 '천둥 치는 밤'(비룡소 발행)은 인간의 힘을 벗어난 천둥이라는 자연 현상을 배경으로 좀 더 근원적인 것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240쪽이나 되지만 펼치면 한 쪽엔 한두 줄의 글, 다른 쪽엔 한참 들여다보면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나오는 그림으로 구성된 이 책은 어릴 적엔 궁금했지만 어른이 되면서 저절로 잊어버리거나 혹은 일부러 억누른 채 덮어 두었던 철학적인 질문들로 가득하다.
'무한의 끝은 어딜까?' '이 세상에 나는 오직 나 하나밖에 없을까?''이따금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누군가가 나를 꼭 껴안고 어루만져 주면 좋겠어.''운명, 그게 도대체 뭘까?''어쩌면 죽음이 우리 기억을 싹 지워 버리는지도 몰라, 우리가 다른 곳에서 다시 태어나 살 수 있게!''난 가끔 궁금해,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다음이 더 행복한지!'
이 책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 나이에 읽어주거나 스스로 읽게 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유로이 생각하고 표현하도록 내버려 두고 지켜보길. 섣불리 답을 주거나 가르치려 들어 아이들의 상상력에 틀을 만들지 말도록.
쉬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아이들의 질문을 귀담아 들어보자. 때로는 할머니의 할머니, 또 그의 할머니를 누가 낳았나 거슬러 올라가다가 다윈의 진화론과 창조신화까지 등장하게 되고 잠시나마 내 아이가 천재는 아닐까 행복한 착각을 할 수도 있다.
학기말 시험이 끝났다고 놀이동산으로, 영화관으로, 노래방으로, 게임방으로 몰려다니며 노는 아이들아! 무서운 속도감과 현란하게 움직이는 화면과 한껏 내지르는 목청에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것도 좋지만, 한번쯤 차가운 방바닥에 등을 대고 조용히 침잠하여 자신을 들여다보는 건 어떻겠니?
그리고 우리 어른들, 이 책을 가지고 홀로 고요히 머무르자. 머리에 떠오르는 어떤 사소한 생각도 가볍게 여기지 말자. 눈에선 눈물 방울이, 입가엔 미소가, 가슴엔 두근거림이 있고 마음은 한없이 넓어질 것이다.
/대구가톨릭대 도서관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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