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 등으로 탈출한 북한 주민을 대거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워싱턴 포스트지 16일자 보도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김정일(金正日) 정권 흔들기가 본격화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이 구상은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북한을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탈북자 인권 문제를 등한시하는 중국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등의 다목적 포석에서 검토되는 것으로 보인다.정권 흔들기 차원에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탈북자 수용 후 발생할 엄청난 파급효과 때문이다. 주중 외국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하는 탈북자들이 한국행만큼이나 미국행을 선호하는 점을 감안하면 10만∼50만명에 이르는 주중 탈북자 중 상당수는 미국행을 택할 것이고,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대거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려는 북한 주민이 급증할 개연성이 높다. 이 경우 북한 체제는 크게 흔들릴 것이 뻔하다.
설사 북한 당국이 북중 국경을 봉쇄하는 강수를 구사하더라도 탈북자라는 체제불안요인을 내부에서 관리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자연 내부 불안정성이 커져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이 쿠바 카스트로 정권에 대해 강경책을 구사할 당시 쿠바 난민을 대거 받아들인 전례를 연상하면 미국의 의도가 쉽게 파악된다.
이 구상은 미 상원이 탈북자 난민 인정을 폭 넓게 인정하도록 하는 북한난민구호법안을 통과시키고 미 국방부가 북한 내 군사쿠데타가 발생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작전계획 5030'을 마련 중이라는 보도 등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 구상이 나온 배경에는 김정일 정권이 교체되지 않고서는 핵 문제 등 북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없다는 미 행정부내 강경파의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대북 다자대화를 시도중인 미국은 이 같은 시각에서 북한의 수입원인 마약밀매 미사일 수출 등을 저지하기 위한 해상봉쇄정책도 병행해 왔다.
하지만 이번 구상은 본격적인 체제 흔들기보다는 해결의 실마리를 좀처럼 찾을 수 없는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꺼내든 우회적 대북압박 카드 성격이 짙어보인다. 미국의 구상이 중국측 협조 없이는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중 탈북자 관리를 통해 북한의 안정을 사실상 뒷받침해 온 중국이 탈북자들의 미국행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북핵 문제에서 중국의 조정자 역할을 인정해 온 미국이 대중 외교마찰을 불러올 이 구상을 실행에 옮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미 당국자들이 30만명의 탈북자 수용 가능성을 거론하면서도 첫 해 수용규모를 3,000명으로 낮춰 잡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이다.
따라서 미국은 당분간 탈북자 수용 카드를 실행에 옮기기 보다는 이런 카드가 있다는 식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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