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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정치자금에도 햇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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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정치자금에도 햇볕을

입력
2003.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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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안녕하시냐'(굿모닝)가 당분간 정치권과 공직사회에서 그저 아침에 주고받는 형식적인 인사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서민을 등쳐 긁어 모은 돈이 정치후원금으로 둔갑하고 로비자금으로 변하여 사방에 뿌려졌다는 사실과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정권의 실세, 여야 중진급 의원, 고위공무원의 이름이 아침에 여는 신문을 대문짝만하게 장식할지 모른다.25년의 관록을 자랑하는 집권여당의 대표는 역시 정치꾼이다. 위기타개의 전략이 상식 밖이다. 역대 대선 자금이 의혹덩어리였지만 지금껏 한번도 속시원하게 밝혀진 적도 없고 감히 검찰이 손도 대지 못했음을 안 노회한 정치인은 대선 자금으로 관심을 돌리면서 자신의 개인적 비리를 묻어두려고 한다. 200억 리스트의 존재를 흘려 반응을 살피는 꾀도 써 본다. 영수증 미발급은 인정하지만 대가성은 없다고 둘러대면서 받은 돈을 모두 돌려주겠다며 피해자들의 화살을 피하려 한다. 자기 선거구의 사업가가 엄청난 액수의 돈을 그저 아무 뜻 없이 건네주었는지 아니면 은밀한 청탁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려는 검찰의 출석요구에는 당의 현안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버티고 있다.

집권여당의 대표가 대선자금이라는 레드라인을 넘어서면서 대통령을 협박하자 당황한 청와대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자신을 위해 모은 대선 자금이 돼지저금통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음직한 데도 대통령은 당에서 알아서 한 일이라고 일단 책임을 미룬다. 사분오열의 위기에 있는 여당의 신·구 주류도 한 목소리를 낸다. 개혁을 표방하는 신주류도 구린 돈을 받아 챙긴 당대표를 감싸 안는다. 실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격언이 엉뚱한 곳에서 그 의미를 확인시켜준다.

야당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어쩐지 힘이 없어 보인다. 급기야 집권여당은 국회출석 의무화로 검찰총장을 위협한다. 청와대와의 정보보고 핫라인도 없애고 특검에 밀린 치욕을 씻으려는 절치부심의 검찰을 또다시 정치권의 시녀로 전락시키려 한다.

한 나라의 정당이, 그것도 집권여당이 대선을 치르기 위한 후원금을 얼마나 걷어 어떻게 쓰고 지금은 얼마나 남았는지 조차도 모를 정도로 낙후된 정치현실이다. 입만 벌리면 수십억원씩 엇갈린다. 국민성금에 의한 깨끗한 선거라고 홍보했던 80억원의 돼지저금통이 겨우 4억원 정도였다고 이제야 실토한다.

주먹구구식의 대선자금 운용에 관한 한 야당인 한나라당도 별반 차이가 없다. 대선 자금 내역을 공개하라는 시민단체의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버티는데, 일부 공개한 내역마저 허위와 부실 투성이라고 한다. 사후에 선거자금을 검증하는 장치가 없으니 매번 총선이나 대선 때마다 의혹이 제기되고 그 의혹이 족쇄로 따라다닌다.

그 악순환과 족쇄로부터 벗어나려면 대통령부터 당선직후에 약속한 것처럼 정치자금에 대하여 고백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야 한다. 그리고 정치자금으로부터 모두가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정치자금법 개정에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한다. 야당은 다수 의석의 힘으로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 다수의 야당조차도 여전히 정치현실을 이유로 정치자금법 개정에 소극적이라면 그들의 대여·대정부 비난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다.

개정내용은 합법적인 정치자금 모금을 현실화하고, 정치자금 조성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후원금의 액수제한은 없애되 후원금 기부시 수표사용을 의무화하고 정치자금의 수입·지출시 선관위에 신고된 예금계좌를 사용하는 방안도 실현가능한 방안일 것이다.

이제 은밀하고 음습한 그 곳에 햇살을 비추어 정치자금의 흐름에 음성적 정치자금이 유입되지 못하고 부패정치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시민단체의 주장처럼 햇볕정책은 정치자금에도 시급히 시행되어야 할 정책이다.

하 태 훈 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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