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다자 회담이 5자 회담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지난 6월 하와이에서 열린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에서 베이징 후속회담으로 남한과 일본이 추가로 참여하는 5자 회담 개최를 잠정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다자적 해결을 강조하는 미국이 정작 북핵 문제의 중요한 이해 당사국인 러시아의 참여에 대해서는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첫째는 미국의 국제적 행위에 제동을 거는 러시아에 대한 외교적 반작용이다.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의 대 이라크 결의안을 무산시켰고 프랑스, 독일 등과 연대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반대했다. 지난 2월에는 북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회부를 둘러싼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이사회 표결에서도 기권하여 미국과의 대북 국제적 공조에 선을 그었다.
둘째는 북핵 다자협상을 미국의 구상대로 유리하게 이끌고 가려는 전략적 계산이다. 러시아는 지난 1월 한반도의 비핵화를 담보하는 조건으로 대북 체제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을 제공하자는 이른바 '일괄타결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북미 직접 대화에 의한 동시해결의 원칙을 강조하는 러시아의 포괄적 해법은 사실 북한 주장에 가깝고 미국의 해법과는 거리가 있다. 북한의 주장에 동조적인 러시아가 참여할 경우 다자회담의 성격과 효율성이 훼손될 수 있다. 요컨대 북한-중국-러시아와 한국-미국-일본이 3 대 3으로 정치(鼎峙)되는 평행선을 달릴 것이고, 이는 미국이 의도하는 대북 봉쇄적 압박을 반감시키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셋째는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과도한 영향력 확대에 대한 견제이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으로 초래된 한반도 화해분위기 조성은 러시아, 남한, 북한 3자 경협과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 종단철도(TKR) 연결, 시베리아 및 극동 에너지 자원 가스관의 한반도 연결사업 가능성을 높여 주었다. 이는 한반도 문제의 중재자로서 러시아의 역할공간을 확대시킨 반면 상대적으로 미국의 그것은 위축시켰다. 미국은 철도와 가스라는 지극히 정치적인 상품을 앞세워 한미 동맹체제의 균열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러시아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넷째는 동북아 국제관계 주요 행위자로서 러시아의 불인정 내지는 의도적 무시이다.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은 러시아를 유라시아 강대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유럽의 국제관계에서는 러시아의 위상과 역할을 인정하되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상대하겠다는 분리 대응 전략을 추구한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이 베이징 3자 회담을 확대 다자회담의 틀로 외연을 넓히는 과정에서 러시아를 제외시킬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만 러시아는 북한의 두 가지 핵심 요구사항, 즉 체제보장과 경제보상, 특히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을 '일시적이 아닌 항구적으로'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거부하는 북미간 불가침조약을 대신해 미국 중국 러시아 공동 안전보장이라는 현실적 대안을 감안할 때, 그리고 셀리그 해리슨이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의 하나로 제시한 사할린 가스관의 남북한 관통을 통한 일종의 '북한판 신 마셜플랜'을 고려할 때, 러시아를 배제하고서 북핵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란 쉽지 않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북한 '몰아 세우기'가 진정 한반도의 비핵화를 목표로 한다면 러시아의 참여는 선택이 아닌 당위적인 것이다.
홍 완 석 한국외대 교수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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