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말 '이용호 게이트' 수사를 맡고 있는 차정일 특별검사의 사무실에 청와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김대중 대통령의 처조카 이형택 예금보험공사 전무를 구속한 특검의 칼날이 이수동 아태평화재단 이사를 겨냥할 때였다. 전화를 건 사람은 차 특검과 사법시험 동기인 이재신 청와대 민정수석. "이수동씨는 김 대통령과 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다. 위에서도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이 많다"며 대통령의 뜻을 에둘러 전달했다. "그게 죄가 잘 되겠느냐. 이수동씨는 대가성 없이 그냥 용돈으로 받은 돈이라고 한다. 그 뜻을 헤아려서 잘 조사해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이수동씨가 특검에 소환되면서 청와대의 반응은 한층 날카로워졌다. "아직 확인도 안된 수사내용이 왜 자꾸 언론에 보도되느냐"며 특검의 수사보안 문제까지 지적했다. 한 특검 관계자의 증언. "이수동씨 사건에 대한 청와대의 관심은 지대했다. 특히 DJ는 이수동씨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던 것 같다. 이재신 수석은 이수동씨 건으로만 두세번 전화를 걸어왔는데, 가급적 선처해달라는 취지가 담겨있었다. 특히 수사내용이 언론에 여과 없이 보도되는데 무척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차 특검도 수 차례 전화가 걸려온 사실을 시인했다. "자세한 내용은 말하기 힘들지만 청와대가 이수동씨 사건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수사내용의 보안과 언론보도에 대해 우려했다. 하지만 특검수사는 청와대의 전화에 영향 받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약과였다. 3월에 들어서 특검수사가 김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에게로 번지면서 청와대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홍업씨와 그의 측근 김성환씨의 비자금 문제가 언론에 보도된 직후 청와대는 한번 더 전화를 걸어 불쾌감을 표시했다. 청와대측은 "이게 특검의 수사범위에 들어가느냐. 이용호 게이트와 홍업씨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이재신 수석 외에 여권의 고위인사들도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특검 관계자들은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며 답을 피했다.
차 특검의 입장도 난처했다. 엄밀히 볼 때 홍업씨의 비자금 문제는 '이용호 게이트'와 직접 관련성이 적었고 수사 대상으로 보기 어려웠다. 수사기간도 얼마 남지않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모든 의혹을 낱낱히 밝히라"는 언론과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특검은 최대한 수사한 뒤 검찰에 넘기기로 했다. 특검 관계자의 말. "당시 청와대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특검(特檢)이 아니라 잡검(雜檢)이다. 어떻게 모든 걸 다 수사하느냐'는 말까지 들려왔다. 정균환 총무는 '특검이 수사내용을 언론에 흘리고 수사범위를 벗어나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공공연히 비난했다. 특검팀을 범죄집단시하는 발언이 여권 곳곳에서 나왔다."
당시 청와대의 사정은 어땠을까. 청와대측은 "전화를 건 것은 사실이지만 수사간섭이나 압력행사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재신 전 수석의 말. "나는 차 특검과 언제든 통화할 수 있는 사이다. 내가 전화한다고 사건처리 방향이 바뀔 것도 아니었다. 차 특검은 간섭은 고사하고 그런 말이 씨알도 안 먹힐 사람이다. 다만 수사보안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수동씨가 이 때문에 특검을 고소했던 걸로 안다. (전화를 건 것은) 아마도 보안문제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사법시험 동기니까 업무관계를 떠나 할 얘기도 있고 특검에 대한 예산지원 문제도 있었다. 수사범위의 일탈 문제를 차 특검에게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청와대 기자단에 특검의 보안과 수사범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수 차례 환기한 적은 있다."
수사가 예기치 못했던 방향으로 튀자 청와대는 정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검이 인기에 영합,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며 공공연히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A씨의 증언. "특검법상 피의사실이나 수사기밀은 공표하지 못하도록 돼 있는데 확인도 안된 의혹이 매일 보도됐다. 각 수석은 물론이고 비서관들도 '특검이 잘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홍업씨 수사로 인한 김 대통령의 상심은 대단히 컸다."
그렇다면 이재신 수석의 전화는 DJ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을까. 다시 A씨의 말. "이재신 수석이 독자적 판단으로 전화를 건 것은 아니다. 청와대 분위기가 워낙 안 좋았다. 공식 논의가 있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내부의 기류를 반영해서 전화한 것이다. 그러나 DJ가 지시를 내린 적은 없다. 대통령은 속으로 삭일 뿐 그런 말을 할 분이 아니다. 통화 내용도 보안문제를 지적한 것이지 '누구는 조사하지 말라'거나 '수사를 확대하지 말라'는 식의 압력이 아니었다."
청와대의 이 같은 기류는 사건이 대검으로 이첩된 뒤 더욱 증폭돼 결국 법무부 장관의 경질사태로 이어졌다. 청와대는 홍업씨의 비리를 이 잡듯이 파헤치는 대검의 수사태도에 극도의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홍업씨는 대통령 아들로 예우 받기는커녕, 과도할 정도로 혹독한 수사를 받았다. 청와대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주변 사람 400∼500명을 조사해서 안 잡혀 들어갈 사람이 누가 있느냐. 저렇게 심한 수사는 유례가 없다'고 격분했다. 검찰은 홍업씨 친구와 선후배, 술집 마담과 아가씨들까지 불러 조사했다. 연일 대서특필되는 홍업씨 기사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도 죽을 맛이었다."
그만큼 송정호 법무부 장관에 대한 청와대의 불만도 컸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의 말. "송 장관은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게 청와대의 평가였다. 그래서 물러난 것이다. 검찰에 대한 지휘권 발동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검찰을 통제하라는 의미도 아니었다. 다만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데 검찰이 너무 나간 면이 있었다."
그러면 검찰은 청와대의 '주문'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당시 대검의 간부는 "지휘권 발동 요청에 대해 수사팀은 전혀 몰랐다. 이명재 검찰총장도 내색을 안 했다. 장관 선에서 자른 것 같았다. 청와대 분위기가 최악이라는 건 알았지만 수사팀이 압력을 받지는 않았다"고 회고했다.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 "홍업씨 수사가 다소 무리하게 진행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 "특검에서 뚜렷한 혐의도 제시하지 않은 채 막연히 '수상한 점이 많으니 수사하라'는 식으로 떠넘겼다. 여론 때문에 수사를 안 할 수도 없었다. 무작정 홍업씨를 죽이라는 식이니 청와대도 기분 나빴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무엇이든 혐의를 찾아야 했다. 석달간 끈질긴 계좌추적과 조사 끝에 홍업씨의 비리를 찾아냈지만 통상적인 수사방식은 아니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이용호 철저히 先상납 後청탁 수사 좁혀와도 "괜찮다" 큰소리
DJ정부를 게이트의 나락으로 빠뜨린 이용호 G&G구조조정(주) 회장은 권력실세들과 폭넓은 인맥을 구축했지만 그가 뿌린 로비자금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이씨가 여운환씨와 이수동 전 아태재단 이사,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씨, 도승희씨와 김봉호 전 의원 등에게 건넨 돈은 45억여원. 하지만 특검수사팀조차 '이것이 모두'라고 믿지는 않았다.
특검 관계자의 말. "이씨의 비서나 측근들로부터 '이씨가 현금이 든 골프가방을 수시로 갖고 나갔다'는 진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씨는 물증이 확실한 돈만 시인할 뿐 나머지는 입을 닫았다. 현금은 추적이 안되니 도리가 없었다."
이씨는 철저하게 '선 상납, 후 청탁' 방식으로 로비를 했다. 특별한 학맥·인맥이 없었던 이씨는 향우회나 실세 주변의 인사를 통해 접근, 친분을 쌓은 후에야 로비를 벌였다. 검찰총장이 다니는 호텔의 헬스클럽에 가입하고 그 동생을 회사에 영입하는 등의 방식이다.
차정일 특검의 설명. "이씨는 돈으로 호감을 산 뒤 나중에 청탁하는 스타일이었다. 광주상고 동문회를 통해 김형윤 국정원 경제단장과 이형택 예금보험공사 전무를 알게 됐다. 드라이버를 선물하거나 쓸모없는 땅도 사주면서 신임을 얻었다."
자신이 구축한 로비인맥에 자신감을 가진 이씨는 대검에 긴급체포되기 1주일 전인 2001년 8월 말 이미 검찰의 동태를 눈치챘지만 "걱정없다. 난 괜찮다"며 큰소리를 쳤다고 한다. 그의 한 측근은 "이씨는 2000년 서울지검에 긴급체포됐다 풀려난 이후 자신이 항상 수사대상에 올라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만만했고 구속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에 차있었다"고 전했다.
이씨는 로비의 폭은 넓었지만 큰 돈은 좀체 쓰지 않았다. 김형윤씨 등 국정원 간부들과도 친했지만 활용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되자 지갑을 닫았다. 이씨의 변호인인 제갈융우 변호사. "이씨는 절대 공짜로 돈을 주는 법이 없었고 의심도 많았다. 이수동씨에게 5,000만원을 준 것도 도승희씨의 요청 때문이다. 그마저도 도씨를 못 믿어 이씨에게 직접 건넸다."
/배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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