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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3.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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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포기하고 바다가 보이는 허름한 횟집에 앉았습니다.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비가 쏟아졌고 날도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비오는 날은 횟집인심이 넉넉한 법. 홀로 여행이지만 큰 맘 먹고 한 접시 시켰습니다.옆에는 남자 네 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혼자 회를 먹고 있는 이남자를 얼마나 이상하게 생각할까. 쑥스러워 일부러 눈길을 피하고 회접시만 응시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화가 상황을 뒤바꿨습니다. “이렇게아무 부담 없이 여행을 온 게 도대체 얼마만이야? 10년은 넘은 것 같애….”고개를 돌려 그들을 봤습니다. 40대 중ㆍ후반으로 보였습니다. 각 지역의사투리가 골고루 섞인 것으로 짐작해 고향 친구들은 아니고, 격의 없이 말을 나누는 것으로 볼 때 오랜 친분이 있는 모양입니다.이들은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대한민국 여행지 어디에 가도 함께 여행을 다니는 중년의 남자들은 없습니다. 회사일이나 회의 등으로 부담스러운나들이를 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도, 순수한 여행은 아닙니다. 더구나 주말도 아닌 평일에 말이죠. 구성이 불가능한 조합입니다.

계속 엿들었습니다. 그들은 회에 대한 품평으로 시작해 즐겁게 이야기를나누었습니다. 더 나이 들어 후회하기 전에 억지로 일정을 맞췄다고 합니다. 1박2일의 짧은 여정이지만 이구동성으로 “오길 참 잘했다”고 좋아합니다.

술이 얼큰해지자 잠시 사회 생활의 잔영이 술상 위로 퍼졌습니다. 회사 이야기, 아이들 학교 이야기, 자꾸만 일러지는 남자들의 정년 이야기, 주변에 늘어만 가는 기러기 아빠 이야기….“야! 그런 얘기 잊으려고 왔는데, 여기서도 그 레퍼토리냐? 분위기 쇄신하자!” 한 사람이 집에 전화를 겁니다. 나머지 남자들도 그 집 안사람을잘 아는 모양입니다. 돌아가며 통화를 하면서 너털웃음을 웃습니다.

“바닷바람 맞으며 술 먹으니까 하나도 안 취하네.” 말은 그렇게 하지만밤이 깊어지면서 적당히 취했습니다. 우산을 쓰는 둥 마는 둥 바닷가에 나갑니다. 비가 오는 밤바다. 조명을 받은 파도가 하얗게 밀려옵니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그 세대가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빗물에 젖은 채 파도와 왕복달리기를 하며 아이들처럼 소리를지릅니다. 보는 사람의 속까지 시원해집니다.달랑 하룻밤의 여정. 그러나 그들에게는 정말 귀하고 행복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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