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자, 내일자 신문 기사 말입니다. 우선 제목부터 좀 부드럽게 바꿔주시고, 내용 중에서도…."11일 저녁 7시30분쯤 한국은행 간부들이 잇따라 전화를 걸어와 12일자 한국일보에 게재된 '한은, 아니면 말고'라는 제목의 '기자의 눈' 칼럼을 고쳐달라고 요청했다. 한은의 경제 예측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내용의 이 글을 제목은 물론이고 내용도 5∼6군데나 '한은의 입맛에 맞게' 수정해달라는 부탁이었다.
3월 청와대가 가판신문(전날 저녁 7시쯤 나오는 초판신문) 구독을 끊은 직후 덩달아 가판구독 중단을 선언한 한은이 가판에 실린 기사를 고쳐달라고 은밀히 요청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2일자 한국일보 경제섹션에 실린 '채권시장 거품우려' 제하의 기사 중 '채권가격이 피크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는 한은 고위 관계자의 코멘트에 대해서도 한은은 발언자를 금융계 관계자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과 금융통화위원회(6월12일) 개최 전 1주일간 한은 간부들에게 내려진 '함구령'을 감안해 발언자를 덮어달라는 부탁이었다. 한은 공보실 직원들은 이날 밤 11시쯤 신문사로 찾아오기까지 했다.
청와대가 가판 구독을 중단한 것은 가판을 보고 언론과 비정상적으로 협상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은은 종이에 인쇄된 가판신문 구독만 끊었을 뿐 인터넷 등을 통해 가판 점검을 계속해왔고, 급기야 기사수정 부탁까지 하고 나섰다.
시장을 책임지는 기관으로서 가판을 볼 필요가 있으면 청와대 눈치를 보지 말고 떳떳이 구독을 하든지, 아니면 밖에다 선언한 대로 가판대응을 절대 하지 말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어정쩡한 눈치보기, 바로 지금 중앙은행의 위상이 아닌가 싶다.
남대희 경제부 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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