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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정치중심 사고"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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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정치중심 사고"의 함정

입력
2003.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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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현상을 하나의 동일한 이유로 설명하는 것을 환원주의(還元主義)라고 한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하나의 근본 원인에 연관시켜 이해하려는 시각이다. 부정적 뉘앙스가 붙는다. 학문에서 환원주의는 현상의 복잡성을 간과하고 지나친 단순화의 함정에 빠지게 한다고 하여 극복의 대상이다. 학문뿐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환원주의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정치적 환원주의를 생각해보자. 학문적 환원주의에 비해서는 비교적 덜 주목받아왔을지 몰라도 심각한 위험성을 내포한다. 다양하고 복잡한 여러 현안이나 현상을 어떤 하나의 정치적 요인에만 결부시켜 생각하고 다룰 때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각각의 국정사안은 고유한 성격을 갖는 만큼 맥락을 중시하며 나름대로의 논리에 따라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 사안을 보다 공정하고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다. 만약 모든 사안을 다른 어떤 정치적 요인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획일적인 외부 정치논리가 개별 사안의 고유한 논리를 억누르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요즘 국내에서는 신당 논의가 다른 대부분 국정사안의 이면에서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신당 창당 움직임이 각 정치 및 정책 사안을 음으로 양으로 어떻게 이끌고 있고, 각 사안의 전개과정이 신당 가능성에 어떤 여파를 미칠지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각 경우를 그 자체로 보기보다는 신당 논의의 정치적 연장선에서 부산물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정대철 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작금의 논란이 그렇다. 그가 불법적 정치자금을 받았는지, 그의 발언이 시사하듯 민주당의 대선자금에 의심스런 점이 있는지, 한나라당 의원 중에도 금품로비 연루자가 있는지 등의 법적 문제를 법의 공정한 적용이라는 기준으로만 보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보다는 정 대표가 신당 추진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팽(烹) 당하는 것은 아닌지, 그의 돌출발언이 신당 창당에 어떤 여파를 미칠지, 제(諸)정파가 신당과 관련해 앞으로 또 어떤 수뢰 의혹을 누구에게 터뜨릴지 등 정치적으로 연관된 의문이 우리 마음 속에 더 크게 떠오르고 있다.

정치자금 사안은 그렇다 치자. 대북송금 특검법이나 심지어는 경기부양책 등 정책 사안조차 법이나 정책의 논리보다는 신당 논의와 정치적으로 연관시켜 보는 경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이 모든 국정논의도 알게 모르게 신당이라는 근본적 변수로 연결되는 정치적 환원주의가 퍼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원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정치적 환원주의는 위험하다. 법과 정책의 논리로 풀어야 할 현안을 정치적 논리로 본다면 법의 공정성과 정책의 실효성이 경시되기 쉽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함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돼선 곤란하다. 모든 주요 국정현안을 신당 관련 정치대결의 관점에서만 볼 때, 주(主)인 법과 정책 영역의 가치들이 희생됨은 말할 나위도 없고 다차원의 정치논리 중에서도 일부만이 중시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제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정치적 환원주의를 불식시켜야 한다. 각 국정현안을 그 자체로 다루기보다는 신당논의로 결부시켜 보는 것은 언론인이나 일반시민이 꼭 냉소적이거나 음모론 신봉자이기 때문은 아니다. 근래 여야 정치인들의 행태는 세인들로 하여금 그러한 환원주의적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정치인들이 국정운영보다는 정파적 이익을 우선하고 정치개혁보다는 정당 이합집산에 더 관심을 둔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신당 중심의 정치적 환원주의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환원주의가 일반시민의 사고까지 지배하게 되었고 그런 정치적 편집증이 국정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정치인들에게 당위적 호소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끼게 된다.

임 성 호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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