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넘긴 후배가 박사학위에 도전하겠단다. “왜, 교수라도 되고 싶어서?”라고 하니 “아뇨, 고등학교 교사 되려구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야, 요즘 팔팔한 미국 박사들도 다 실업자야, 꿈 접어’라며 한보따리충고를 늘어놓으려던 나는 의외의 답변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교육학과와 교육대학원을 다닌 이 후배는 일간지 기자이다. 사회부에서 검찰 출입도 오래 했고, 경제부, 산업부 기자도 거쳤다. 이번에 시작하려는학위는 사회교육 분야인데 이를 마치고 나면 고등학생들에게 진짜 한국 사회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제 경력이면 그게 가능하지 않겠어요?” 반문하는 후배는 자기처럼 사회경험이 많은 40∼50대 인사들을 모아 ‘고교 교사되기 운동’을 벌이겠다고 기염을 토했다.문득 내 고교 시절을 떠올렸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고등학교에서 배웠다’고할 정도는 아니어도 참 좋은 선생님들 밑에서 참 좋은 교육을 받았다. 한글전용 정책탓에 변변한 한자교육을 못 받은 우리에게 국어 선생님은 ‘다 너희들을 위한 것’이라며 맹렬히 한자를 가르치셨다. 그 선생님이 아니셨으면 난 지금도 한자 문맹 신세였으리라.지금은 유명화가가 되신 김차섭 선생님께는 미술을 배웠는데 자기 이름을 차서비(次序非·첫째 아니면 안한다)라고 소개하신 기개가 아직도 인상깊다. 사회 교사는 지금 교육부총리이신 윤덕홍 선생님이셨고 그 외 많은 선생님들이 후에 대학교수가 될 정도의 실력이셨다.
30년전 내가 받았던 교육의 질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을까. 단언컨대 그건아닌 것 같다. 아니, 세월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큰아이 가정책에 나오는 요리법은 6·25때나 해 먹었을 구식이고, 둘째 사회책은 내가 봐도 졸음이 올만큼 따분하기 짝이 없다. 마음같아선 아이에게‘이런 건 왜 공부하니, 다 집어치워’ 라고 소리지르고 싶을 정도다. 교사들은 또 어떨까. 내 고교 선생님들처럼 그렇게 소신과 실력으로 무장한분들일까.교사의 대부분이 박사학위 소지자이며 그 교육의 질을 한번 체험해 보면년 수만달러의 학비가 아깝지 않다는 미국의 사립고교들. 우리나라 고등학교가 이들 수준이 된다면 죽음과도 같은 외로움과 싸워가며 유학비용을 대야 하는 기러기 아빠들은 사라질 것이다.기자로서의 경험을 고등학생들에게 환원하고 싶다는 후배의 야심은 신선한충격이었다. 이 충격이 많은 이들의 공감으로 번져간다면 우리의 교육 현실은 뜻밖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으리라. “선배도 영어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영어 교사하면 좋잖아요”. 후배 덕분에 인생의 목표가 하나 더생긴 기분이다. 내일부터 영어책이나 다시 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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