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은 집값 순이 아니잖아요."자녀를 명문 공립학교에 보내기 위한 영국 학부모들의 '학군 전쟁'을 빗대 이런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3일 보도했다.
영국의 초등학교(5∼11살)와 중학교(12∼16살) 중 사립학교의 비율은 7.3%로, 입학 요건만 갖추면 누구든 갈 수 있지만 교육비가 워낙 비싸 극소수 특권층만 진학한다. 전체의 92.7%인 공립학교는 한국과 유사한 학군제로 학생들을 배정한다.
따라서 대학 진학률이 높고 교육 환경이 좋은 명문교 근처에 집을 구하기 위한 부모들의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영국 부동산중개업협회(NAEA)의 최근 조사 결과 좋은 학교 근처로 옮기기 위한 이사 비용이 집값만 연간 80억 파운드(1조6,000억 원)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 해 6만 5,000여 가구가 같은 목적으로 가구당 평균 10만 파운드(2억 원)의 집세를 추가 지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협회의 멜핀 윌리엄스 회장은 "전체 부동산 거래량의 최소 5%가 학군 전쟁과 관련이 있다"며 "명문 학교 근처의 주택 앞에는 집을 팔라고 요구하는 학부모들이 하루 종일 줄을 설 정도"라고 말했다.
돈을 싸 들고도 집을 구하지 못한 학부모들의 편법 행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학교 인근 친척집으로 주소를 옮기거나 이마저 여의치 않을 경우 똑 같은 성(姓)을 가진 집주인에게 수수료를 주고 주소를 옮긴다. 학교 배정 희망 원서에 실제 존재하지 않는 번지수를 기록하는 경우도 수 차례 적발됐다.
학부모들이 이렇게 안간힘을 써도 전체 60% 이상이 자녀를 원하는 학교에 집어넣지 못한다. 교육부 등에는 "학교 배정 절차가 잘못됐다"는 항의가 매년 7만 건 가까이 접수된다. 이 때문에 명문 학교 근처의 주소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가디언은 "좋은 학군에 집을 살 수 없는 중산층 이하 학생들의 상실감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학교들은 9월 학교 배정 때 재학생 중 형제자매가 있어야 한다 학교 정문에서 특정 거리 내에 살아야 한다 등의 지원 요건을 내걸기에 이르렀다. 평등한 교육 기회 제공이라는 학군제의 의의가 무색해진 것이다. 실제로 한 학교는 최근 학교 담장에서 108m 안에 살아야 입학 지원 자격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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