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환 지음 전라도닷컴 발행·9,800원"어따, 전라도 사투리 한데 오부레기 모타논께 징허게도 옹골지네. 모지락시럽게 없어져뿐 우리 고장 사투리를 워디서 요로코롬 꾸꿈시럽게 찾어 냈는고."
순전히 전라도 사투리로만 쓴 책 '오지게 사는 촌놈'을 읽고 소설가 문순태씨는 이렇게 감탄했다. 이 책은 전남 광양 백운산 밑 백학동의 농사꾼 서재환(47)씨가 전라도 사람과 자연, 문화를 다루는 인터넷 매체 '전라도닷컴'(www.jeonlado.com)에 '농부네 집'이란 문패를 달고 연재한 수필을 묶은 것. "요새는 촌말도 누가 잘 안 쓴께 다 잊히져 뿔고 있는디, 이 참에 이런 거라도 맹글아 노먼 '아! 이 동네 사람들이 이런 말을 씨고 살았구마!' 허고 혹간에 개득이라도(깨닫기라도) 해 주먼 다행이겄그마!" 라는 게 그가 사투리로 글을 쓰는 이유다.
그는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98세 할머니부터 아버지, 어머니, 아내, 고 1, 고 2 두 아들까지 4대가 항꾸네(함께) 지지고 볶으면서 사는 자기네 집 이야기며 동네 사람들과 자연, 농부의 애환 등을 구수하고 걸쭉한 사투리로 들려준다. 전라도 사투리의 진한 맛이 각별할 뿐 아니라 사람 사는 냄새가 푹푹 나는 글이 읽는 이의 가슴에 착 달라붙는다. 꾸밈없고 진솔하기가 진국이 따로 없고 이거야 말로 보배구나 싶다.
책을 읽다가 깔깔거릴 대목도 많다. 집 마당 한쪽에 파이프를 박아 구멍을 만들어 놓고 골프 치는 이야기 '촌놈은 골푸도 촌놈식으로 친다'를 보자. 허름한 골프채를 사서 골프장에서 튕겨 나온 공을 모아다가 골프 치는 모습이 가관이다. "누가 몬춤(먼저) 공을 구녁(구멍)에 쌔리 여냐(때려 넣냐)가 문젱께 전에 다마치기(구슬치기) 허덩 거맹키로 꼬나보기도 하고 쪼굴씨고(쪼그리고) 재보기도 해감서 폼은 우즌가 뭔가 허는 아보담도 더 잡고 난리구만 이! 아, 골푸가 뭐 별건가. 암디서나 치고 재미만 나먼 그만이제!"
개 키우는 이야기도 우습다. "야는 초복 때나 복치면 되겄고, 저 놈은 말복감인디." 주인의 생각을 아는지 개들은 눈치나 슬슬 본다. 아무리 먹여도 잘 크지 않는 녀석을 보고 하는 말. "살 찌먼 끝장잉께 묵지 말고 버타야 한다고 작정을 했능가 아니면 첨부텀 종자가 부실헝가는 모르겄는디 올 여름에 된장 보르기(바르기)는 틀리뿐 상시푸다. 야야! 올 여름에는 느그들 손 안 댈랑께 기냥 한 해나 따나 맘 편허니 살거라 이!"
표준말 천하가 된 지 오래, 사투리가 낯설어진 지금이고 보니 이 책을 읽으려면 암호 해독하듯 낑낑 대며 한참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도 즐겁기만 하다. 글이 워낙 맛깔 나게 씌어진 데다 거침없고 솔직한 입담이 재미있어 책을 놓기가 싫어진다. 꿈틀거리면서 뻗어가는 사투리의 말 줄기가 우줄우줄 춤 추는 것이 꼭 판소리 한 대목을 듣는 것 같다. 촌티 난다고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사투리가 사실은 얼마나 힘있고 풍부한 울림을 지닌 것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그에 비하면 표준어는 얼마나 깍쟁이 같고 싱거운가.
책 말미에는 '농부식'으로 풀이한 '농부의 들꽃사전'과 '농부의 사투리 모음집'까지 붙어있다. '들꽃사전' 중 '고추' 항목을 보자. "한여름에 밥맛 없을 직에는 깨작깨작험서 반찬투정 부릴 것 없이 찬물에 씩은 밥 한 덩거리 몰아갖고 낭창낭창허고 땅글땅글허니 약 오른 이 놈 하나 들고 꼬치장 푹 찍어 갖고 열무짐치를 칭칭 감아설라무네 한 입짜리 와작 씹어 묵으먼! 입안이 하딱하딱허고 콧잔등에서 땀이 볼금볼금험서도 개운해지는 맛에 밥 한 그럭 금세 뚝딱이지라?" 이만큼 맛있게 쓴 생활밀착형 풀이가 또 있을까. '사투리 모음집'은 낱말풀이는 물론 용례와 표준어 해설까지 갖추고 있어 사투리 연구 자료로도 훌륭하다.
이 책의 "원고 뭉텡이를 꼴까닥 밤 샘시로 읽어부렀다"는 소설가 문순태는 지은이의 사투리 말솜씨에 홀딱 반했는지 신이 나서 한 마디 했다.
"사투리는 지방 사람덜이 거칠 것 없이 오랫동안 암시랑토(아무렇지도) 않게 잘 써온 말이다. 사투리는 그 지방의 힘이며 기신(기운)이다. 우리도 무담시(괜히) 주눅들거나 우세시러워(부끄러워) 말고 서로 이무럽게(스스럼없이) 전라도 사투리 팍팍 씀시로 살아갈 일이다"고. 이 책을 계기로 각 지방 사투리로 쓴 사람 사는 이야기가 줄줄이 쏟아져서 표준말의 그늘에 묻혀있던 사투리가 의기양양하게 모습을 드러내 우리말을 풍요롭게 살찌우는 걸 보고 싶다. 책을 덮으면서 외친다. 사투리 만세, 만만세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 "오지게 사는 촌놈"저자 서재환씨
이 '오지게' 재미있는 책을 쓴 서재환씨는 어떤 사람일까. 서문에서 그는 "배지나 따땃허니 채우고 할 지서리(짓이) 없응께 노락질(장난, 심심풀이) 삼아서 사는 이약을(이야기를) 끼적기린" 게 책이 됐다며 부끄러워 했다. 하지만 촌에 살아도 꿀릴 것 없다는 꼬장꼬장한 자존심, 바쁘고 고된 농사일로 삭신이 쑤셔도 이웃 간에 인정을 잃지 않고 사람 사는 잔재미를 놓치지 않는 여유가 갈피마다 묻어나는 책을 살피면 그가 결코 '등 따시고 배지 따땃헌 사이비 촌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가 살아온 이력이 그걸 말해준다.
순천 농림고등전문학교를 나와 군에 갔다 온 뒤로 내내 고향을 지키면서 농사를 지었다. "촌놈도 배지 내밀고 사는 꼬라지를 도시사람들헌티 배기주고(보여주고) 싶어서 된(고된) 일 험서도 죽겄다 소리 안 허고 '좋다! 좋다!' 험서 상께 넘들 보기에는 사이비로 배기는 농사꾼"이다. 그런데 보통 농사꾼은 아니다. 촌 사람들이 책 한 권이라도 수월하게 읽게 하자는 욕심으로 마을문고를 운영해온 지 23년 째다. 달구새끼(닭)와 염생이(염소), 강아지가 돌아다니는 마당 한 켠에 대나무로 엮은 널따란 평상을 놓고 그물침대도 매달아 아이들이 앉거나 누워 놀면서 책을 볼 수 있게 해 두었다.
아이들을 도서관으로 불러 들이려고 1986년부터 10년 간 한문 가르치는 서당을 열기도 했는데 시골 애들도 학원을 두세 개 씩 다니는 세상이 되다 보니 "애기들 잡을 일 있냐" 싶어 그 일은 접었다. '비구리봉'이라는 제호로 5년 가까이 매달 지역신문을 낸 적도 있다. 혼자서 기사 쓰고 사진 찍고 편집에 제작, 배달까지 했다.
이쯤 되면 지역에서 무슨 사회단체 활동이라도 했을 법한데 그렇지는 않다. 그저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혼자서 이런 저런 일을 해왔을 뿐이다. 미군 탱크에 깔려죽은 미선이 효선이를 추모하기 위해 자기 집 마당에서 촛불시위를 하기도 했다. "더 이상 이런 속 씨리고 부끄럽은 일이 이 땅 욱에 생기지 말게 해줍시사"고, "아나 어른이나 맘만 항꾸네(함께) 모투고(모으고) 내 헐 말 지대로 헌다면 언 놈이 맘대로 갖고 놀지 못허겄제" 하고 다짐하면서.
지난 5일 그의 집 마당에서는 '책 맹근 잔치'가 열렸다. 집에서 담근 술과 음식으로 손님을 대접하고 전라도 사투리 자랑대회까지 겸했다. '젤로 오진상'(1등상)을 받은 여고생은 그가 키운 촌닭 한 마리를 상품으로 받았다. 순천, 광양시장 등 지역 유지까지 찾아와 200여 명이나 되는 손님들이 밤늦도록 뻑적지근하게 놀다 갔다. 그는 10일 전라도닷컴에 '오지게 사는 촌놈이 진짜로 오진 날' 이라는 제목으로 감사의 글을 올렸다. "근디 촌놈 씨부렁기린 글을 갖고 뭐나 된덱끼 너무 떠들아 쌍깨 인자 글씨기도 겁나뿌는디… 아무리 뭐라고 치끼고 뒤씨고 깝죽기리 싸도 nongbu 서재환이는 서재환이제 지놈이 어디 간다요? 내나 거그 시방 있는 이 자리서 여지껏 허던대로 험서 버투고 살라요!" 누가 뭐라든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이웃과 더불어 언제나 한결같이 사는 서재환씨.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여간 마음 든든한 일이 아니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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