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인간에 대한 오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인간에 대한 오해

입력
2003.07.12 00:00
0 0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김동광 옮김 사회평론 발행·2만5,000원지난해 미국 하버드대는 세계가 익히 이름을 아는 석학 두 사람을 아깝게 잃었다. '정의론'을 쓴 정치철학자 존 롤스와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다. 특히 20년 가까이 복막중피종이라는 희귀암과 싸우다가 60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뜬 굴드는 인간의 우열을 생물학적으로 해명할 수 있다는 결정론자들과의 타협 없는 논쟁으로 유명하다. 또 난해한 생물학 이론을 대중이 알기 쉽도록 소개하는 데 정력을 쏟은 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굴드의 저서는 이미 몇 권이 국내에 번역 소개돼 있다. 판다의 엄지손가락 등을 예로 들어 진화 이야기를 풀어낸 '판다의 엄지'(세종서적 발행) 역시 진화이론을 자신이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야구에 빗대어 설명한 '풀하우스'(사이언스북스 발행) 등이다. 모두 대중적인 과학 에세이집이다.

'인간에 대한 잘못된 척도' 정도의 제목으로 옮기는 것이 합당할 이 책 역시 에세이 성격의 글을 모은 것이다. 굴드가 책에서 초점을 두는 것은 지능지수(IQ)에 대한 생물학자들의 잘못된 견해이다. 지능이 본질적이고 변하지 않는 지적 가치라며 모든 사람을 수치로 서열화할 수 있다는 온갖 결정론적 주장에 대해 그는 강하게 반박한다.

예를 들어 스위스의 물고기 화석 연구 권위자 루이 아가시(1807∼1873)는 인류가 단일한 종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발생 자체가 달랐다고 주장하는 '다원발생설'의 지도적 학자였다. 아가시가 이 이론을 인간에 적용한 데는 1846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처음 흑인을 본 것과 관련이 있다. 아가시는 고국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호텔에 고용된 사람은 모두 유색인종이었습니다. …퇴화되고 열등한 이 인종을 보았을 때 동정심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와 같은 피가 그들의 몸 속에 흐르고 있을 리 만무하다는 감정을 억누르기란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고 썼다.

프랑스의 알프레드 비네가 고안한 IQ 테스트는 당초 유전론적 결정론으로 흐를 위험에 대한 분명한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식별하기 위한 목적이 아이들에게 교육 불능이라는 낙인을 찍는 결과를 부를 것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심리학자들에 의해 비네가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굴드는 이 시기가 '미국에서 편협한 호전적 애국주의와 국수주의, 백인 보호주의, 국기 밑에 도열하는 허울만 좋은 애국심이 어느 때보다 강렬하던 시기'였다고 설명한다. 이민 제한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유대인 쿼터제가 실시됐으며 남부 여러 주에서 인종 차별 폭력이 횡행할 때였다. 하지만 우습게도 1920년대 생물학적 결정론을 주장한 사람들은 대부분 30년대에 그 이론을 철회했다. '박사학위 받은 사람들이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실업자 대열에 가세했고, 빈곤이 타고난 우둔함으로 설명될 수 없게 된 시대'였기 때문이다.

굴드는 생물학적 결정론이 한 차례 풀이 꺾인 뒤에도 사그라지지 않고 되풀이해서 떠오르는 이유를 과학 내적 요인보다는 사회정치적 요인에서 찾았다.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이나, 소외된 저소득층이 심각한 사회 불안을 야기하거나 권력을 위협하는 시기에 엘리트 지배층의 불안감이 고조되는 것과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갈수록 세련되게 포장되지만 결국 이런 결정론의 뿌리는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