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여자가 해야 할 일과 남자가 해야 할 일을 나눠서 강요하며 각자의 성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엄청난 이단아 취급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기혼녀이면서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나를 우리 사회는 이단아 취급한다.여자대학을 나온 탓에 동문회라고 해서 가보면 오직 여자들만이 득시글거린다. 처음 동문회에 나갔을 때는 늘 생뚱했던 대학 시절이 생각나 자리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보니 일종의 의무감이 아니고서는 모임에 나갈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사회 생활 3년째인 지금은 동문회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동문회는 이제 나에게 눈치보지 않고 히히덕거리며 공통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자리로 바뀌었다.
동문회가 왜 이렇게 소중해졌냐고?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 땅의 20, 30대 여성은 성차별을 느끼지 않고 자랐다. 적어도 사회에 나오기 전까지는…. 그런 만큼 사회에서 겪는 성차별의 충격은 만만치 않다. 세상을 살다 보면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만 하는 불리한 일들이 참 많다. 그러다 보니 동문회가 소중해지는 것이다.
동문회에서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한다. 직장에 다니고 주부로 지내면서 겪는 어려움을…. 대학에 다닐 때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엄청나게 중요해졌다. 여자들끼리 모여서 수다나 떨지 뭐하냐고? 아니다. 우리도 우리만의 커뮤니티가 있다.
이 땅을 살아 가는 비즈니스 우먼으로서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 남는 노하우를 여자들만의 방식으로 나누는 모임도 있다. 이미 험난한 길을 걸어 정점에 달한 선배는 노하우의 정수를 우리에게 조금씩 나누어 준다. 그런 선배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 여성이 출세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구나"하는 두려움에 전율한다. 중간 관리자급에 달한 내 또래들은 해결사이자 문제의 제기자이다. 고민거리를 쏟아내기도 하고 해결책을 스스로 찾아내도 한다.
20, 30대 여성을 '우려 먹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경제활동 인구가 많아야 한다. 뛰어난 여성들에게 제 몫을 찾아주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여자대학 동문회가 여자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비법을 전수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냥 유쾌하게 즐기는 그런 곳이 됐으면 한다.
정 재 경 에이스골프회원권거래소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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