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중국 방문을 끝으로 정부 출범 이후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미·일·중 주요 3국과의 정상외교를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북핵 문제의 해법 모색을 중심으로 노 대통령의 정상외교 스타일이 대략 드러났고 이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굴욕외교'라는 비판이 나올 만큼 다소 충격적인 방식으로 새 정부가 실용주의적 노선을 택했음을 알렸다. 한일,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실용주의적 외교 기조는 그대로 유지됐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실용 외교가 정책과 명분에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실리도 챙겼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뒤따른다. 무엇보다 실용 외교를 대화 상대방에 따른 유연성으로 혼동, 정상외교의 일관된 흐름을 만들어 내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화 상대방에 따라 말이 바뀌는, 지나친 유연성이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노 대통령 특유의 '점잖고 예의 바른 외교'와 맞물리면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치고 있다는 우려다.
노 대통령도 9일의 기자간담회에서 중국의 입장을 감안, '인식을 함께 했다'는 표현에 대한 합의를 포기했고 별 계산 없이 '당사자간 대화'를 다자 회담의 뜻으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북미간 직접대화로 오해될 수 있는 표현에 대해 반기문 청와대 외교보좌관 등이 나서 "중국측이 명시적 언급을 하지는 않았으나 한일이 참여하는 다자회담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며 "앞으로 중국이 역할을 할 것이며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며 진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막후교섭의 여부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의 성과는 대통령의 말과 글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 같은 접근 방식은 상당히 위험스러워 보인다. 우선 워싱턴에서는 미국에 대한 과잉찬사로 비쳤고, 도쿄에서는 일본의 유사법제 입법 및 북핵 강경 태도에 대한 대처미숙으로 불거졌다. 정상외교의 일관성 결여는 시스템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태스크포스팀장은 반기문 외교보좌관이지만 라종일 안보보좌관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정작 단독 정상회담에는 배석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방중에서 한중 관계를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고 미래지향적 경제협력의 기반 구축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한 대목이다. 이러한 성과가 북핵 문제에 가려진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노 대통령은 한중 협력을 동북아 평화번영 구상과 연결시키고 있으나 그 방식이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포퓰리즘적인 것이어서 자칫 공허해질 기미가 나타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번 방중기간에서 "꿈은 이루어진다"는 표현을 되풀이 사용했으나 후진타오 주석이 공동 기자회견에서 거의 화답을 하지 않는 등 중국 지도부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상하이=고태성기자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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