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주주로서의 '애정'에서 비롯됐든, 투자 실패에 따른 '분노'에서 나왔든 주주대표소송과 증권손해배상 소송은 주식회사 제도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지켜주는 버팀목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기업이 개인 소유인 양 운영해 온 재벌들을 섬뜩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주주대표소송과 증권손해배상 소송에는 사실 큰 차이가 있다. 주주대표소송은 상법 제403조에 따라 전체 주식의 1% 이상을 소유한 원고집단이 회사에 불이익을 끼친 경영진에게 그 책임을 묻는 소송이다. 공익적 성격이 강하며 승소해도 혜택은 원고 개개인이 아닌 회사 전체에 환원된다.
이에 반해 증권손해배상 소송은 원고가 특정 회사의 주주라는 것 외에는 일반적인 손배 소송과 큰 차이는 없다. A사의 주식을 샀는데, 나중에 A사가 분식회계 등 비정상적인 경영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면 그 주식을 일종의 '속아서 산 물건'으로 보고 피해액을 돌려달라는 소송이다. 주주대표소송과 달리 원고의 자격에 제한이 없는 대신, 소송의 혜택은 소송을 제기한 원고 개개인에게만 돌아간다.
국내 주주대표소송의 첫 판례는 1998년 제일은행 부실대출 사건에 대한 서울지법의 판결(97가합39907)로 만들어졌다. 참여연대는 당시 52명의 제일은행 소액주주를 모아 한보그룹의 당진제철소 사업에 대한 타당성 검토나 여신심사 임무 등을 소홀히 한 채 뇌물까지 받고 대출을 해줘 은행에 2,700억여 원에 이르는 손해를 입힌 데 대해 전 행장 등 전직 이사 4명을 상대로 손배소송을 냈다.
법원은 이사들의 책임을 인정, 원고가 제기한 400억원의 소가를 모두 받아들여 회사에 돌려주라고 주문했으며,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변경된 소가 외의 판단 부분은 그대로 확정됐다.
제일은행 소송이 뇌물 등 부패 경영에 대한 단죄였다면 2001년 수원지법의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 판결(98가합22553)은 기업경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정상적인 경영 판단들에 대해서까지 이사들의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판례로 받아들여진다.
삼성전자의 전·현직 이사 11명을 상대로 회사에 환원해야 할 승소 가액만 902억 8,000여 만원에 이르렀던 이 판결에서 법원은 부실기업 인수 보유주식의 고의적인 하향매각 정치권에 대한 뇌물공여 등 회사에 피해가 돌아간 여러 경영 행위들에 대해 배상 책임을 물었다. 참여연대는 LG그룹을 상대로 이사진이 부당내부거래로 회사에 피해를 끼쳤다며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주주대표 소송에 비해 증권손해배상 소송은 회사, 경영진, 회계법인 등 그 대상이 좀 더 폭 넓은 편이다. 서울지법은 지난 해 한라그룹의 한 소액주주가 "경영진의 중대한 과실로 인해 주가가 하락했으니 피해액을 보상하라"며 정몽원 전 한라그룹 회장을 상대로 낸 손배소송에서 "1,270만원을 배상하라"며 승소 판결했다. 또 대우그룹의 소액주주 5명이 분식회계를 눈감은 회계법인에 대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서도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들 소송들은 검찰 수사나 부도 등으로 그 부패·부실 경영이 이미 밝혀진 기업에 한해 제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한계가 있다. 기업의 회계장부 열람 청구권을 주주대표소송의 청구 요건(1%)보다 많은 발행주식의 3% 이상을 보유한 주주에 한해 허용하고 있는 상법의 헛점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부실 경영'의 증거를 찾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부실 경영의 증거를 찾았다고 해도 그 행위가 실제 투자자의 피해로 이어졌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할 때는 대부분 패소한다.
3월 서울고법은 동양종금의 소액주주 8명이 동양종금과 회계법인을 상대로 낸 손배소송(2002나57647)에서 "사업보고서의 허위 기재 등 불법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후 주가의 흐름으로 볼 때 해당 불법 행위로 주가가 하락해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는 없다"며 1심대로 패소 판결했다.
피해액을 산정하는 데 있어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서울지법은 지난 해 "국내 증시의 유가증권 매매체계는 언제 사들인 주식을 언제 팔았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데도 투자자의 손해배상액 산정기준이 되는 현행 증권거래법 14조와 15조가 지나치게 애매해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재에 위헌제청을 제기한 상태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 증권집단소송법
'투명경영의 보루가 될 것인가, 소액 투자자를 울리는 또 하나의 속임수가 될 것인가.'
입법 과정에 있는 증권집단소송법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소수의 투자자가 부실경영으로 인한 증권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 소송의 혜택을 같은 처지의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하자는 취지의 증권집단소송법은 개미들의 '요술지팡이'로 통한다.
배상액이 미미했던 증권손해배상소송의 소가를 천문학적인 숫자로 높이고, 기업 경영의 건전성을 향상시키는 데 주주대표소송에 버금가는 기여를 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골자는 원고가 소송의 혜택 대상자 기준을 지정해 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이 그 타당성을 검토, 판결하고 이후 판결 내용에 불복하는 사람만 소송제외신청을 해 판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도록 한다는 것. 그러나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증권집단소송법안의 독소 조항은 법의 취지를 무력화 시킬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안은 대표적인 불법 행위인 분식회계에 대해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회사(전체 분식 적발 업체의 8.6% 가량)만 이 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고 있다.
또 소송비용을 건당 2,000만원 가량으로 정하고 이를 예납해야만 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한 점, 3년간 3건 이상의 집단소송에 관여한 자를 대표당사자에서 배제한 점, 피해집단 구성원을 50인 이상으로 규정토록 한 점 등도 반발을 사고 있다.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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