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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서]사라져가는 상하이의 잠옷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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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서]사라져가는 상하이의 잠옷 나들이

입력
2003.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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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 여름은 덥다. 한낮에는 40도에 육박한다.상하이의 여름은 잠옷과 함께 시작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대낮에 잠옷차림으로 하이힐을 신고 핸드백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인, 대형 할인 마트에서 잠옷을 입은 채 쇼핑하는 가족, 집안에서 잠옷 차림으로 자연스럽게 TV 인터뷰를 하는 상하이 시민들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속옷이라도 잘 갖춰 입으면 좋으련만 분홍색 잠옷에 빨간색 속옷을 입고 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보는 이가 도리어 낯이 뜨거워질 정도다.

상하이 사람들이 더운 여름날 잠옷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편하다는 것. 대부분 맞벌이를 하는 상하이 사람들은 퇴근 후 집에서 잠옷을 입고 집안일을 하다가 외출할 일이 있으면 그대로 잠옷을 입은 채로 나가고 돌아와서는 또 잠옷을 입은 채 잔다. 한국인은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기가 막힐 일이다. 많은 외국인들이 상하이 사람들은 잠옷을 부의 상징으로 여겨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잠옷을 입고 외출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상하이의 잠옷 패션은 역사가 제법 깊다. 19세기 후반부터 상하이 주택은 석고문(石庫門) 양식으로 지어지기 시작했다.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에서도 볼 수 있는 석고문 양식은 집 전체가 골목을 향해 열린 구조로, 골목길 양쪽으로 문을 마주하고 있는 집들이 쭉 이어져 있다. 그 시절에는 여름 밤만 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문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었다. 선풍기, 에어컨이 없던 때라 밤 바람이 여름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낙이었기 때문이다. 기다란 의자를 문 앞에 놓고 바람을 쐬거나 평상에서 이웃과 바둑이나 카드놀이를 하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은 옛 상하이의 가장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이때 바람을 쐬다가 들어와 바로 잘 수 있다는 편리함 때문에 잠옷 패션이 생겨난 것이다. 할머니 어머니 세대는 이것이 습관화해 지금도 잠옷을 입고 밖에 나가면서도 누구의 눈길에도 멋쩍어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잠옷 차림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최근 현대식 아파트가 여기저기 들어서면서 석고문 앞에서 서로 잠옷을 입은 채 이웃들과 한담을 나누는 정겨운 장면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더불어 정부의 규제와 상하이인들의 문화수준 향상 등으로 잠옷 패션도 예전만 못하다. 이제 상하이 신세대들은 부모, 조부모 세대와는 달리 잠옷을 입고 밖에 돌아다니는 것을 창피하게 여긴다. 상하이 사람들의 잠옷 패션 역시 하나의 역사적 전통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현대'라는 이름 앞에 부끄러운 것이 되어 힘없이 사라져 가는 게 아쉽기도 하다.

윤 소 영 중국 상하이 저널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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