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은 사라진 고사와 우리 옛 문헌의 보고와도 같은 책입니다. 이번 번역으로 고전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자 운에 따라 분류, 본격적 체제를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평가되는 '대동운부군옥'이 최근 경상대 남명학연구소 경상한문학연구회의 번역으로 소명출판에서 나왔다.조선중기 문신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1534∼1591)가 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력으로 편찬한 전체 20권 가운데 이번에 역주된 것은 절반인 10권이다.
학술진흥재단이 지원하는 동서양 명저 번역사업 가운데 가장 방대한 분량이었던 이 책의 출간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하다. 역자의 한 사람인 최석기 교수의 말대로 "유사 이후 조선 중기까지" 우리나라 관련 사항이 처음으로 망라됐다는 점을 우선 꼽을 수 있다. 키워드는 지리 국호 성씨 효자 열녀 수령 목명(木名) 금명(禽名) 등 11가지로 나뉘어 있다.
초간이 사전에 인용하고 출처를 밝힌 중국 책 15종과 신라 이후 이 책 편찬 당시까지의 우리나라 서책 172종 가운데 적어도 50종은 현재 실물을 확인할 수 없는 책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신라의 기이한 일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도 이 책의 여러 인용을 통해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 명종 때 시인 김극기의 '김거사집'도 마찬가지다.
책의 가치는 초간이 56세이던 1589년 편찬 직후 퇴계의 제자 고봉 김성일이 "임금께 아뢰어 간행해서 후세에 널리 전하도록 해야 한다"고 한 부를 빌려갔다는 기록에서도 뚜렷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곧 임진왜란이 터져 국가 차원의 간행 사업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그로부터 350년 뒤에야 판각과 간행이 재개됐다.
번역 책임을 맡은 윤호진 교수는 "초간이 20대 초반에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는 문헌이 적다는 점을 안타깝게 여겼다는 이야기로 보아 이 책의 편찬은 30년 넘는 땀과 열정이 담긴 것"이라고 말했다. "초간은 특히 당시 선비들이 중국의 역사와 치란흥망에 대해서는 마치 어제 일처럼 자세히 알고 있으면서 막상 우리 역사에는 문외한인 것을 통탄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그의 주체적인 역사 의식이 오롯이 담긴 책이지요." 실제로 이 책 이후 백과사전들이 더러 나왔지만 이만큼 방대하게 우리 문헌을 인용한 경우는 없었다.
번역보다 힘들고 서너 배 시간이 걸렸던 것은 출처를 밝히는 작업이었다. "예를 들어 출처가 '동문선(東文選)'인 경우 책에는 '選'으로만 표기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동문선 어디에서 따온 문구인지를 정확히 밝히는 식으로 역주 작업을 했습니다. 80% 정도 정확하게 출처를 표시했습니다." 게다가 최종 역주본에는 전체 항목에 대한 가나다 순과 주제별 색인을 모두 만들어 일반인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4년 가까이 걸린 이번 번역에 이어 나머지 10권 역시 윤 교수 주도로 2005년 하반기 완성을 목표로 역주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11일 경상대 남명학관에서는 이번 출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도 열린다. 문의 (02)585―7840
/진주=글·사진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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