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도 화제작의 성찬이다. 그런데 새로 선보이는 세 편 모두가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아깝다. 우선 톡톡 튀는 국산 로맨틱 멜로 코미디 '싱글즈'를 강력 추천한다. 너무나도 직접적이어서 호기심을 반감시키는 제목과는 달리 영화는 전혀 예상치 못한 길고도 진한 여운을 안겨준다. 무엇보다 '사랑하기 좋은 날'(1995)의 권칠인 감독의 진득한 연출 호흡 덕이다. 여로 모로 넘칠 법한데도 좀처럼 과잉으로 흐르지 않는다. 놀랍게도 절제를 잃지 않는 것이다.그렇다고 뭐 대단한 작품인 양 젠 체하지도 않는다. 그저 작금의 싱글들의 삶을 진솔하게, 실감 넘치게 보여주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정도랄까. 그런데도 뜻밖의 진정성과 감동이 배어난다. 뭐라고? '초절정 매력덩어리들'이라고는 하지만 속물들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선남선녀들의 '화끈∼한 연애질'을 자처하는 영화에서? '놀랍게도'라든가 '뜻밖'이라고 한 건 그래서다.
장진영·엄정화·이범수·김주혁 네 주연들의 연기 조화가 단연 돋보이는 것도, 그들이 분한 인물들이 그토록 입체적이고 생동하는 것도 실은 감독의 연출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것이다. 물론 다분히 인위적으로 비칠 수도 있는데다 제목에서 이미 암시되는 탓에 싱거울 수도 있겠으나, 파격적 결말도 적잖이 의외다. 사랑보다 우정이 더 소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대중상업영화에서 본 적이 거의 없어서다. 나난(장진영), 동미(엄정화) 두 여성 주인공의 당당한 선택에서 새로운 가족 모델의 가능성까지 엿보여서이기도 하고. 참으로 간만에 만나는 '쿨'한 우리 영화다.
드림웍스가 '슈렉'에 이어 또 다시 빚어낸 애니메이션 '신밧드―7대양의 전설'은 반면 극히 '핫'하다. '싱글즈'에서는 볼 수 없는 화려한 스펙터클이 85분간 숨가쁘게 펼쳐진다. 신밧드 역의 브래드 피트를 비롯해 마리나 역의 캐서린 제타 존스, 이번 작품의 '와일드 카드'일 법한 혼돈의 여신 에리스 역 미셸 파이퍼 등의 목소리 연기는 말할 것 없고, 잠시도 쉬지 않는 원화의 동선들이 그야말로 황홀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그러나 그 스펙터클과 이야기 사이의 빼어난 조화다. 신밧드의 모험담에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함에도 영화 속으로 흠뻑 빨려들 수 있는 건 그 덕분일 터.
'핫'하기로 치면 흥행 제조기 짐 캐리 주연의 '브루스 올마이티'(사진)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어느날 갑자기 신의 능력을 부여받은 불평불만자 브루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바탕 통렬한 풍자 코미디. 허를 찌르는 기발한 상상력 따위도 그렇거니와 우리네 인간들의 원초적, 세속적 욕망을 투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투명인간'의 변종쯤일 이 시의적 영화 역시 제법 권할 만하다.
/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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