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높은 산에 올라갔느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 산악인이 있었다.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문학이 거기 있었기 때문에 문학을 하게 된 것이라고. 그러나 과연 그런 것일까.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선택에 운명의 휘장을 드리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문학을 영원불멸의 지고한 존재로 설정하고 자신의 글쓰기를 문학에 대한 일종의 신앙 고백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된다. 이럴 때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우문에 불과하다. 문학은 곧 소명인 것이다. 그것은 하거나 말거나 할 수 있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전존재의 헌신을 요구하는 숭배와 매혹의 대상이다. 젊은 시절엔 나 역시 문학에 입문하게 된 것을 어떤 불가항력적인 외적 힘의 소산으로 치부하곤 했다. 내가 문학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문학이 나를 선택했으며 내가 문학을 향해 나아간 것이 아니라 문학의 부름을 받아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상정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실은 자기기만에 다름 아니며 실존적 물음에 대한 진정한 답변이라기보다는 그것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은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다.문학 행위를 지속하기 위해선 왜 문학을 하는가 따위의 질문은 떠올리지 않는 편이 좋다. 그렇지 않은가. 문학이 거기 있기 때문에 문학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문학적 행위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을 생략하고 관성적으로 해오던 작업을 계속하게 해주는 편리한 방책으로 구실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부득이 자신의 내면의 심연과 맞닥뜨려야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종교인에게 신앙의 위기가 도래하듯 문학의 정원에서 묘목을 기르는 데만 열중하던 문학인에게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왜 그 일을 지속하는 것일까 하는 격심한 회의가 찾아오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자신이 하던 일의 뿌리를 캐보고 싶은 욕망, 그래서 주어진 지평의 한계를 넘어 사유를 진척시켜 보고자 하는 충동을 언제까지 회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글쓰기가 자신에게 주어진 은총이 아니라 끝없는 노역으로 여겨질 때, 혹은 자신의 글쓰기가 어떤 장벽에 봉착해 더 이상 나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을 때, 그래서 자신이 한 말이 이미 누가 한 말의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지난 2월 나는 두 후배와 함께 네팔에 있었다. 너무 익숙해져 버린 일상의 반경에서 벗어나 지금 이곳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 홀로 내 속의 캄캄한 심연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젊은 시절 내 주위엔 유독 인도와 티베트, 그리고 히말라야의 설산을 동경하던 문청들이 많았다. 술 한 잔 마시면 그들은 한 번 가보지도 못한 그곳의 풍광과 그곳 사람들의 사는 방식을 감격에 찬 목소리로 읊조리곤 했다. 그 시절 나는 그들을 경멸했다. 내게 그들은 현실을 의도적으로 망각하고 자신의 세속적 무능을 정신적 초월을 통해 보상 받으려고 애쓰는 한심한 족속들로 여겨졌다. 그런 내가 젊음의 신열이 거의 다 가실 나이에 이르러 새삼 그곳에서 어떤 해답이라도 찾아보겠다고 간 것이니 여간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니다.
카트만두에 사는 시 쓰는 대학 선배의 도움을 받아 우리 일행이 트레킹 코스로 선택한 곳은 흔히 많이 찾는 에베레스트나 안나 푸르나가 아니라 랑탕이라는 산이었다. 그야말로 다 썩었다고 밖에는 할 수 없는 낡은 버스에 몸을 싣고 열 시간 넘게 털털거리며 구비구비 산모롱이를 돌아 도착한 것은 둔체라는 마을이었다. 도중에 마오이스트 반군들 때문에 몇 번이나 버스를 오르내리며 검문을 받아야 했고 현지 마을에서도 등화관제와 야간 통행금지라는, 우리에겐 대단히 친숙한(?) 옛 추억을 떠올리는 풍속과 조우해야 했다. 이미 우리나라가 몇 십년 전에 통과한 시절을 지금 현재형으로 살고 있는 그곳 사람들의 남루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의 양태를 지켜보는 일은 한편으로 착잡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기이한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눈앞에 펼쳐진 장대한 산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걷는 일과가 시작되었다. 전나무로 가득 찬 숲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다 보면 어느덧 산 하나가 뒤에 남겨졌다. 우리 일행을 이끈 선배의 말을 빌리자면 마치 책장을 넘기듯 산굽이 하나를 넘기고 다시 다음 산굽이를 천천히 넘기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을 읽고 있었던 것일까. 한참 걷다 보면 식사를 하거나 하루 묵어갈 수 있는 롯지가 나타났고 그 허름한 숙소에서 잠시 쉬거나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 묵묵히 걷는 일과가 반복되었다. 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계곡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물소리가 있을 뿐 사방은 고요했다. 길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라곤 간혹 하산하는 외국인 트레커들이거나 소와 야크의 무리들 뿐이었다. 먹고 걷고 자고 일어나 다시 걷는 일의 반복. 철이 든 후 항상 뭔가에 쫓기듯 살아온 나에게 이처럼 끝없이 걷고 또 걷는 일은 참으로 이색적인 체험이었다.
그곳에선 내가 한국이란 나라에서 아등바등 살아오며 해오던 일이 참으로 멀고 아득하게 느껴졌으며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고 매달린 것들이 참으로 사소하게 보였다. 발 아래 두툼한 융단처럼 깔린 낙엽을 밟으며 나는 멀리 만년설에 덮인 설산 꼭대기를 한참 바라보곤 했다. 한나절만 가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며칠을 걸어도 설산은 여전히 그만한 거리를 유지한 채 멀리서 빛나고 있었다.
우리 시대에 숭고함이란 극히 찾아보기 힘든 것이 되어버렸다. 멀리 보이는 설산이 그토록 아름답게 다가온 것은 그것이 내 마음 속에 숭고함이란 감정을 자극해서였을 것이다. 내가 한때 꿈꾸었던 문학이란 것이 아마 바로 저러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멀리서 고고하게 흰 이마를 높이 쳐들고 있는 의연한 존재. 만인이 우러르며 숭모하는 거대한 부동의 중심. 접근할 수는 있어도 끝내 도달할 수는 없는 피안의 저편. 눈이 머무는 곳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 히말라야 산기슭을 걸으며 나는 어느덧 다시 낭만적 감수성으로 가득찬 20대의 문청 시절로 되돌아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학을 일생에 걸친 구도와 순례의 여정에 비유하는 것은 진부한 듯하지만 아직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수사인 듯하다. 그렇다면 산이 있기 때문에 산을 오른다는 말이 맞는 것처럼 문학이 있기 때문에 문학을 한다는 말도 어느 면에서 사실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이때의 문학은 거리와 시장 한복판에서 부대끼며 살다가 어느 순간 그런 난장에서 한걸음 비켜서 먼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문득 시선에 들어온 눈 덮인 하얀 산이 불러일으키는 신선한 느낌에 가까운 것이다. 종교가 힘을 잃어버린 시대에 문학은 어쩌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숭고함의 화신으로 존재하고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지상에 인간의 발이 닿지 않은 순결한 설산이 남아 있지 않듯 현실의 불순함에 오염되지 않은 언어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런 순백의 문학은 언어가 씌어지기 이전의 하얀 백지 상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검은 글자가 하얀 백지를 바탕으로 삼아 비로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듯이 문학 역시 멀리 빛나고 있는 설산의 존재를 전제하고서야 지금 이곳의 비루한 현실을 묘사하고 서술하는 자신의 과업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내면에 깊은 심연만이 아니라 그처럼 높은 설산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너무 오래 잊고 지낸 것은 아닐까.
높이 올라갈수록 나무는 점차 드물어지고 황량한 암석으로 뒤덮인 고개와 설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거센 바람이 부는 히말라야의 밤은 춥고 적막했다. 옷을 껴입고 겨울 침낭에 들어가도 찬 기운이 뼈에 스며들어 한밤에 몇 번씩 잠에서 깨곤 했다. 플래시 불빛에 의지해 숙소 바깥으로 나와 소변을 보고 있노라면 아, 저절로 감탄사를 터트리게 할 만큼 큼지막한 별들이 머리 위에서 무수히 반짝이며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 설산을 향해 빠르게 떨어져 내리는 별똥별이 눈에 띄었다. 그 별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던 소망을 세 번 외우면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그때 나는 무슨 소망을 중얼거렸던가.
● 연보
1960년 전북 전주 출생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 당선돼 시인으로 등단 1983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 '연금술사의 꿈―정현종의 시세계' 당선돼 평론가로 등단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죽은 자를 위한 기도' '타오르는 책' 평론집 '바벨탑의 언어' '신성한 숲' '숲으로 된 성벽'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 '그리고 신은 시인을 창조했다' 연구서 '미적 근대성과 순간의 시학' 등 대한민국문학상(1989) 동서문학상(1995) 서라벌문학상(1996) 김달진문학상(1998) 소천비평문학상(1999) 현대문학상(2001) 팔봉비평문학상(2002)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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