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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비화 - 대통령의 사람들]<19>게이트의 사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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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비화 - 대통령의 사람들]<19>게이트의 사슬 ②

입력
2003.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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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월초, 서울 삼성동의 '이용호 게이트' 특별검사 사무실. 김대중 대통령의 처조카 이형택 예금보험공사 전무와 특검팀 사이에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며칠째 이어졌다. 특검 수사관은 "영부인에게 보물발굴사업을 보고하지 않았느냐"고 집요하게 추궁했지만 이 전무는 완강하게 버텼다. 발굴업자들의 입에서 "이희호 여사가 관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진술이 나온 상황이었다. 차정일 특검은 이미 "'청와대 윗선'이 개입했는지 한점 의혹없이 밝히라"고 추상 같은 지시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이 전무는 "99년 12월 이기호 경제수석의 소개로 엄익준(사망) 국정원 2차장을 만나 진도 앞바다의 죽도 보물탐사를 부탁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리숙할 정도로 고분고분하게 진술해왔던 그였지만 이때만은 완강했다.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특검은 이기호 수석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하지만 끈질긴 추궁에도 불구, 이 수석은 판에 박은 대답으로 일관했다. 보통사람이라면 소환조사도 검토했겠지만 상대는 영부인이었다. 자칫 대통령에게도 불똥이 튈 수도 있었다. 1주일간 고심을 거듭하던 차 특검은 결국 그 선에서 수사를 매듭지었다.

당시 특검 관계자의 말. "발굴업자들은 이 전무가 '영부인이 관여하고 있다'는 말을 흘리는 걸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윗분들에게 힘을 얻고 있다며 과시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정작 이형택 이기호씨는 '윗분과는 무관하다'며 적극 부인했죠." 차 특검은 "발굴업자들 사이에 영부인이 관련됐다는 말이 나왔고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판단, 중점적으로 수사했다"며 "그러나 두 사람이 죽은 엄 차장에게 떠넘기니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영부인 관여설'은 이렇게 묻혔지만 의문은 여전하다. 당시 국정원 국방보좌관으로 이 전무를 이수용 해군 참모총장에게 소개했던 한철용 전 소장은 "이 전무의 사적인 민원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보물발굴사업은 이 수석이 총책임자이고 이 전무가 행동대장이라고 들었다. 청와대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국정원도 관심을 갖고 국가사업으로 추진하려던 인상이었다." 한 전 소장은 그러나 영부인 관여 여부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겠다"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발굴업자 A씨는 "영부인이 뒤에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진위는 알 수 없었다"며 "이 전무가 자기과시를 위해 과장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검의 다른 관계자도 "이 수석의 성격이 DJ와 그 일가에 대해서는 충성을 다하는 스타일이라 이 전무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챙겨줬을 수 있다"고 신중론을 폈다.

그러나 당시 해군과 국정원이 보인 행태를 보면 보물발굴을 국가적 사업으로 인식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해군은 당시 "2000년 1월 이 전무의 탐사요청에 '군이 나서기에 적절치 않다'며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방부 관계자는 "일언지하에 거절한 게 아니라 내부검토 등 추가조치가 있었다"고 여운을 남겼다. 특히 해군은 상부에 "1월의 수온은 섭씨8도여서 5월이 되어야 본격탐사가 가능하지만 요원들이 30분씩 교대로 탐사할 수는 있으므로 검토해 보겠다"는 보고서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이 난색을 표한 것은 탐사가 아니라 '장애물 폭파 및 보물발굴' 부분이었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 전무가 이 참모총장을 면담한 10일 뒤쯤 이 전무의 진도방문을 해군이 협조해줬다는 보고를 받았고 실제 탐사를 도와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며 "엄 차장도 보물사업의 국정원 책임자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도와준 걸로 안다"고 밝혔다. 99년 말 해경의 죽도 탐사를 지휘한 국정원 목포출장소도 국가사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었다. 당시 국정원은 발굴업자들에게 "탐사 보고서는 여러분 주장대로 올린다. 다만 발굴작업은 민간에서 하라. 보물매장 징후가 포착되면 국가 차원에서 나서겠다"고 통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이 전무는 정말로 보물발굴사업을 국가적 프로젝트로 추진했던 것일까. 이용호씨의 변호인이었던 임운희 변호사는 "처음엔 국가사업으로 추진했으나 잘 안돼 민간사업이 된 것"이라며 "이 전무의 사업지분 15%는 발굴업자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나중에 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발굴업자 A씨도 "지분 15%는 발굴이익의 사회환원을 위해 만든 것"이라며 이 전무의 치부(致富) 의도를 부인했다. 그러나 특검측은 "사적 이익을 노린 의도도 있었는데 이 수석에게는 국가사업으로 얘기했던 것 같다"고 정리했다.

한편 이 전무는 보물사업 동업자이던 이용호씨가 2001년 9월 구속되자 신승남 검찰총장에게 동생 승환씨의 이용호씨 돈 수수 사실을 전하려 했다. 이 전무가 이 사실을 전해달라고 사람은 김홍업씨의 측근인 김성환 서울음악방송 사장이었다. 왜 하필 김씨였을까. 이상수 특검보의 말을 들어보자.

"처음엔 우리도 김성환씨가 누군지, 왜 이름이 나오는지 몰랐다. 그래서 이 전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김씨도 자기는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김씨가 거짓말을 했다. 이 전무가 김씨에게 부탁한 것은 홍업씨를 통해 신 총장에게 알려달라는 의미였다. 따라서 김씨가 홍업씨에게 승환씨의 연루사실을 알리고 홍업씨가 이를 신 총장에게 통보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신 총장은 "언론을 통해 동생의 비리를 알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특검측은 "그 해명은 사실이 아니다. 홍업씨나 다른 정보라인을 통해서 얘기가 들어갔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차 특검도 "이 전무가 김씨에게 부탁한 것은 홍업씨와 가깝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며 김씨나 홍업씨가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이 전무가 신 총장에게 이용호씨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라는 압력을 가하려 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었다. 이에 대해 이 전무측은 "신 총장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부탁한 것일 뿐 협박과는 거리가 멀다"고 펄쩍 뛰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이 전무는 주변인사에게 이용호 사건을 수시로 문의할 정도로 노심초사했던 것으로 알려져 의심을 떨치기 힘들다. 실제로 특검팀이 승환씨의 차 트렁크에서 압수한 일기장에는 이용호씨 등과 만난 날짜와 장소, 받은 돈의 액수 등이 자세히 적혀있었다. 신 총장의 동생 승환씨는 이미 이용호씨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고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이형택 전무는 이용호씨가 구속된 이후에야 이를 신 총장에게 알리려 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이형택·이용호 추진 보물발굴 사업 국정원 "신빙성 있다" 보고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와 이용호씨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보물발굴 프로젝트는 결국 희대의 사기극이었을까. 일단 이 전무나 이씨가 보물의 존재를 믿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20조원대에 달한다는 매장보물의 추정액은 전혀 근거가 없다.

이 전무는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발굴업자 최모씨로부터 98년께 죽도 보물 얘기를 들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 차원에서 도왔지만 곧 그 일에 깊게 발을 담갔다. 이 전무는 부인에게 "여보, 나 전무자리 다 때려치우고 보물 찾으러 나서 볼까"라고 말했다가 부인이 "당신 미쳤느냐"며 펄쩍 뛰었다고 한다. 이 전무의 측근인사는 "그가 국가사업으로 추진하려던 것도 보물의 존재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씨도 보물에 심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동업자로 대양금고 대주주였던 김영준씨는 "보물사업을 하면 당신과 관계를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이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씨의 변호인이었던 제갈융우 변호사는 "이씨는 보물이 있다고 굳게 믿었고 실제 탐사기록을 봐도 매장 가능성이 높아 의도적인 사기극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99년 말 해경의 탐사 직후 "인공적인 동굴조성 흔적이 발견되는 등 신빙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올렸고 해군도 근거 없는 사업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차정일 특검팀의 한 인사도 "허황된 것만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씨가 구속된 뒤에도 발굴이 계속됐지만 보물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보물은 없는 것일까. 지난달 물막이 공사를 재개한 삼애인더스측은 "이전의 공사 위치가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김동훈 관리부장은 "전도체 실험 결과 지난번보다 5m 바깥지점에서 이상징후가 발견됐다"고 반색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씨도 최근 소액주주들과 접촉하며 경영권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발굴업자 A씨는 "보물 추정액을 해양수산부에 7억여원으로 신고한 것은 10%의 발굴 보증금 때문이고 20조원대라는 말은 이씨가 주가띄우기를 위해 퍼뜨린 말"이라며 "보물액수는 모르지만 매장 가능성은 50대50"이라고 내다봤다.

/배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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