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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3.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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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섬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습니다. 파도와 갈매기가 주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람이 하나, 둘 모였습니다. 먼 옛날, 섬에 처음 둥지를 튼 사람은 어떤 이들이었을까요.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을 겁니다. 어느 면으로 보나 섬은 육지보다 고생스러우니 육지에서의 삶이 그런대로 유복했다면 일부러 섬으로 가지는 않았겠죠.자신에게 등을 돌린 세상을 버렸거나, 아니면 스스로 세상에 등을 돌린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뭔가 절박한 사연에 쫓겨서 나뭇잎 같은 배를 타고 험한 바다를 건너 섬에 들어갔습니다. 먹을 물을 파내고 돌밭을 개간하는 등 온갖 고생을 한 끝에 살만한 보금자리를 일구었습니다.

이후 조금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섬으로 들어갔습니다. 유배자입니다. 옛날 섬은 '사회적 격리'를 의미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섬이 유형지였습니다. 죄질이 나쁠수록 먼 섬으로 보내졌습니다. 신안군의 섬 중에서도 홍도, 흑산도 등 나라의 끝으로 유배를 간 사람은 사형을 간신히 면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배형을 받은 죄인은 살인·강도범이 아닙니다. 대부분 지배 엘리트로 활동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유배지의 문화를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육지보다 깊이 있는 문화를 간직한 섬이 많습니다. 문인의 유배지였던 진도의 문화는 섬세한 기품이 있고, 무인의 유배지였던 완도의 문화는 역동적입니다. 유배자에 따라 문화의 성격도 구분될 정도입니다.

어찌 됐던, 섬은 내몰린 사람들의 안식처였습니다. 말없이 그들을 받아주었고 그 품에서 살게 했습니다. 길게는 1,000년이 훨씬 넘게 말이죠.

사람들이 섬에서 떠나고 있습니다. 신안군만 해도 유인도에서 무인도가 되는 섬이 1년에 서너개씩 된다고 합니다. "빈 섬 하나 사시죠?" 육지 사람들에게 던지는 섬 사람들의 한마디는 절대 농담이 아닙니다. 떠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격리의 안온함을 주었던 불편함은 이제는 그저 불편함일 뿐입니다.

섬은 그대로 있는데 사람들은 제 마음대로 들고 또 납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과 끝없이 변화하는 것은 무엇일까. 배를 타고 보석 같은 다도해의 섬 사이를 가르며 쓸데없는 상념에 젖어 보았습니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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