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고, 국가 위신도 있고…."7일 낮 외교부 출입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 질문 공세에 시달리던 이수혁 차관보가 언뜻 속내를 내비쳤다. 오전 브리핑에서 내내 "외교부의 고유업무는 자국민 보호"라고 강변하던 그도 더 억지를 부리기가 힘겨운 듯했다.
김운용 IOC 위원의 아들 정훈씨가 억류돼 있는 불가리아에 이 차관보를 파견하려 했던 데 대해, 외교부는 여전히 자국민 보호 조치라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당장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취재하다 2년 실형을 받은 사진작가 석재현씨에 대한 외교부의 조치만 봐도 이 주장은 공감이 가지 않는다. 석씨에 대해서는 영사면회나 선처요구 이상의 구체적 조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명이 꼬이자 외교부는 기자들에게 다시 복잡한 설명을 하려 들었다. "정훈씨 사건은 범죄인 인도조약에 의한 제3국과 또 다른 3국과의 관계로 아주 드문 경우이며 제3국의 국내법 위반 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알 듯 모를 듯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외교부 관계자들은 김 위원 아들의 구명활동이 한마디로 상식 밖의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김 위원이 동계 올림픽 유치를 코 앞에 두고 정부에서 고위층 파견 등 적극적 개입을 요청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제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김 위원이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장갑차로 사람 깔아 죽인 놈들도 빼돌리는데 우리는 자국민 보호도 안 해 주느냐"고 주장한 것으로 미뤄 외교부가 받은 압력의 강도를 짐작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힘 없는 서민들에게 '유권무죄(有權無罪)'라는 탄식이 나오게 한 경위를 지금이라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밝혀야 한다.
안준현 정치부 기자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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