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동창회에 갔다. 자연스레 경제 불황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누구는 회사가 망해서 외판 영업을 하고 누구는 생활이 어려워 이민을 떠났다는 등 하나같이 우울한 이야기였다.심지어 변호사 친구까지 요새 우리나라에 변호사 숫자가 많이 늘어서인지 사무실 운영하기도 힘들다고 투덜거렸다. 그러자 제조업에서 일하는 한 친구가 자기가 그 방면에 전문가라며 불황 타개책을 알려주었다. 친구가 말했다. "일단 전국 변호사 노동조합을 만드는 거야." "변호사가 노동자도 아닌데 어떻게 만들어?" 그러자 친구는 한심하다는 듯이 우리를 보고는 말했다. "하여간 일단 만드는 거야. 다음에는 명분이 있어야 해. 가령 지금의 사법제도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질 낮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거지. 그 해결책으로 좀 과격한 주장을 해야 해. 가령 서초동 법원과 검찰청을 철거해서 디즈니랜드 같은 테마 파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지."
"뭐라고? 그건 무리한 주장인데?" "바로 그거야. 정부가 물론 주장을 들어주지 않겠지. 그러면 총파업을 하는 거야. 거리로 나와서 광화문에서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라고. 분명히 동참하는 시민단체들과 언론이 있을 거야." "그 다음에는?"
"모든 변호사와 가족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모이고 시너를 뿌리고 혈서를 쓰는 거지." "그럼 정부가 어떻게 할까?" "물론 처음에는 으레 불법 시위 엄단이니 하겠지. 그러나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문제가 커지면 정부가 먼저 협상하자고 애원할 테니까. 그 때 협상의 마지막 순간에 가서 못이기는 척하면서 '중요한' 테마 파크 문제를 양보하고 대신에 정부로부터 '사소한 문제들'을 양보 받는 거야."
"그 사소한 문제들이 뭔데?" "그거야 가령 앞으로 변호사업종을 면세해준다든가, 변호사들에게 체력단련비나 업무 위로금을 지급하고 변호사 최저수입을 보장하는 것이지. 그러면 정부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고 노조는 파업 목적을 이루는 것이고 시민들은 파업이 끝나니까 좋고, 결국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되는 것이지."
대단해. 나는 속으로 놀랐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면서 수입을 늘릴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왜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까? 그 날 우리는 모두 앞으로 각자 분야에서 불황이 심해질 때를 대비해 이런 방법들을 좀 더 연구해보기로 했다. 역시 친구들을 자주 만나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인가 보다.
김 형 진 국제법률경영대학원 교수·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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